먼곳에서 들려오는 저 종소리 그리운 그시절로 나를 데려가네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신 엄마의 치마 알 수 없는 설레임은 일어나 내가슴 뛰게했지 엄마와 성당에 그 따듯한 손을 잡고 내맘은 풍선처럼 부는 바람속에 어쩔줄 모르네 곱게 쓴 미사보 손때 묻은 묵주 야윈 두손을 모아 엄만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셨을까? 종치는 아저씨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라가본 종탑꼭대기 난 잊을 수 없네 성당을 나와 가파른 길 내려오면 언제나 그 자리엔 키작은 걸인 엄마는 가만히 준비했던 것을 꺼내 그 걸인에게 건네주시며 그 하얀 미소 엄마와 성당
맑은 개울을 거슬러 오르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 동산을 오를 때면 저만치 소를 앞세우고 땀흘려 밭을 일구시는 칠성이네 엄마 집에 도착하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노란대문 생각만 해도 내입가에 웃음짓게 하는 그 문을 두두리면 제일 먼저 날 반기던 강아지 마당에 커다란 버찌나무 그 아랜 하얀 안개꽃 해질무렵 분꽃은 활짝 피고 저녁 준비에 바쁘신 우리 할머니 저만치 담밑엔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은 깊고 차가운 우물 두레박 하나 가득 물을 담아 올리면 그속엔 파란하늘 난 행복했었지 하얗게 춤추던 안개꽃 난 사랑했었지 그곳을 떠다니던 먼지까지도 노란대문 생각만 해도 내입가에 웃음짓게 하는 그 문을 두두리면...
눈뜨면 머리맡엔 어제밤 취했던 흔적 소리없이 아프게 내리는 햇살 문득 돌아보면 유난히 힘겨웠던 한해 새벽 찬공기는 내몸 흔드네 아무 준비없이 시작된 하루 차츰 내가슴은 식어가는데 부끄러움 없었던 내 어린시설 그대는 잊었나요 그 맑은 웃음을 그 푸르른 꿈이있던 내 어린시절 그대도 잃었나요 그 더운가슴을 함께 떠날까요? 모든게 싫어질땐 바람이 시작되는곳 멀리 떠날까요? 무언가 그리울땐 먼옛날 꿈이있는곳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그대가 힘겨워 하는 이유 나도 언젠가 긴시간들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소리없이 쌓여가는 침묵 나도 언젠가 어두운 그곳을 헤메인 것 같아 하지만 그 시간은 함께 나눌 수 없는 그저 혼자 걸어가야 하는 먼 여행 그대가 돌아오는 지친 언덕위에 따듯한 바람 불었으면.... 하얀 꽃잎 날릴 수 있도록
1994년 첫 솔로 앨범 ‘동경’을 낸 조동익은 몇 년 후 한 인터뷰에서 ‘곧’ 두 번째 앨범을 낼 거라고 했다. 그의 ‘곧’은 우리의 ‘곧’보다 아득히 길었다. 1998년의 인터뷰였으니, 22년이 걸렸다. 그의 음악을 아끼는 이들, 조동익이라는 이름에 경외감을 가져왔던 이들 모두가 기다려왔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다.
K팝(K-pop)과 슈가 팝이 지배하는 2020년의 한국 대중음악계에 조동익의 두 번째 앨범 ‘푸른 베개’는 시대와 장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초월한 장인의 숨결을 담았다.
조동익은 하나의 영토다. 고 조동진의 친동생인 그는 형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형이 만드는 음악을 동경하며 자연스레 음악계에 몸담았다. 기타리스트이자 영화 음악가인 이병우와 함께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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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 소녀의 귀 ::
2008-08-15 22:08:10
영화 '장미빛 인생'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 흘러 나오던 곡이다.
영화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암담한 분위기의 만화방이 배경이었고 최재성이 주연으로 나왔다는 것 밖엔.
그 때 나는 서태지가 천재인 줄 알았다.
대학 들어가서 조동익과 이병우가 결성한 '어떤날'의 앨범을 듣게 되었다.
90년대 중반에 그런 음악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 앨범을 듣게 된 것도 그 때 즈음......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교과서에서 이런 구절을 본 기억이 있다. 육사의 시에 대한 해설이었던 것 같은데 대충 뉘앙스가 이랬다. '이런 작가들이 있음으로 해서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문학의 빛이 꺼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아울러 친일 작가들의 (그 당시 그렇게 했던 것에 대한) 변명에 우리가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이 문장이 환기시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80년대 중반부.....
1980년대 초반, 음악계의 기존 행로를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조동진으로 대변되는 차세대 포크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었지만 이들은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외국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일부는 재즈가 대안일 것이라며 비행기에 올랐고, 다른 이들은 그 암울한 시대의 척박한 땅에 남아 꿈을 키웠다. 그러던 86년 말, ‘어떤날’이 등장했고, 역사가 됐다. 조동익이 없었다면 한국의 음악은, 지금 우리의 음악 듣기는 어땠을까.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아 저녁놀을 마주하고 싶어졌을 때,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저녁놀은 언제나 먹구름 일색이었을 게다.
단지 ‘어떤날’이나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앨범들이 아니더라도, 그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