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불문하고 우리는 매년 새로운 스타일과 신선함을 가진 매력적인 신인을 기대하지만, 히트는 커녕 자신의 이름 한번 제대로 알리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게 바로 이 바닥이다. 실력은 기본이요, 외모도 어느 정도 뒷받침해줘야 하고 충성도 높은 서포터들과 라디오에서 틀만 한 커머셜 싱글 한두 개는 필수, 거기다 적절한 시기와 운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다소 복잡한 조건들을 갖추고 유명 레이블이나 소위 '힙합계 거성' 들의 노골적인 지원이 없이도 보란 듯이 성공한 청년이 있었으니, 위즈 칼리파(Wiz Khalif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인디펜던트에서 메이저까지, 가장 정석적인 코스를 밟아 꿈을 이뤄낸 젊은 래퍼, 피츠버그의 스타, 테일러 갱(Tayler Gang)의 리더, “Black & Yellow” 리믹스 열풍의 주인공 등, 그를 수식하는 문구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것은, 최근 급상승한 위즈의 지위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분 상승과는 별개로 위즈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중용이다.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쌓아온 힙합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자신이 뱉고자 하는 내용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유쾌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위즈가 가진 이런 매력들은 이 냉정한 힙합 씬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멋진 청년으로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근거이자 그만의 무기가 되었다.
대형 신인의 탄생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 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위즈는 신인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Black & Yellow” 이전까지는 '유망주' 정도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의 이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웬만한 뮤지션에 버금가는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위즈는 군인이었던 부모님을 따라 여러 지역을 떠돌다 피츠버그에 정착하게 된다. 언제나 음악을 가까이해온 부모님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위즈는 15살 때 ‘Wisdom’을 변형시킨 단어 'Wiz'와 아랍어로 '계승자'라는 뜻의 'Khalifa'를 결합시켜 지금의 위즈 칼리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 발매한 첫 번째 믹스테입 [Prince of the City: Welcome to Pistolvania]으로 로컬 씬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피츠버그 밖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다음 해 발매한 풀렝스 데뷔 앨범 [Show and Prove]는 평단의 극찬과 더불어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Warner Bros. Records)와 계약이라는 큰 기회를 얻게 된다. 2007년, 디제이 그린 렌턴(DJ Green Lantern)과 함께한 믹스테입 [Grow Season], 그 외에 [Prince of the City 2] 등을 발매하고 첫 번째 메이저 싱글 “Say Yeah”를 발표해 빌보드 핫 랩 트랙스(Hot Rap Tracks) 차트 20위에 랭크 되는 등, 기대 이상의 좋은 평과 함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그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데뷔 앨범은 계속 미뤄지고 만다.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결별한 위즈는 다시 그의 고향, 로스트럼 레코드(Rostrum Records)로 돌아와 믹스테입 [Flight School], [How Fly], 그리고 커런시(Curren$y)와 함께한 [Burn After Rolling]을 내놓았다. 이어 발매한 앨범 [Deal or No Deal]은 아이튠즈 힙합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더 많은 이들에게 위즈의 음악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이어 위즈 본인도 성공의 발판이 된 앨범이라고 부르고 있는 믹스테입 [Kush & Orange Juice]는 발매하자마자 야후, 구글, 트위터 등에서 큰 이슈거리가 되었고 ‘2010 XXL Freshmen 10’ 에 선정되는 등, 각종 온라인 매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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