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최화자)는 1998년 8월 26일 입국한 결혼 동포 이주민입니다.
♪저는 중국서 입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국립 한국방송대학교 3학년 재학중입니다. 중국길림성 용정시 팔도향 평도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산수가 수려하여 지나가던 행인들도 발길을 멈춘다는 아름다운 시골이었습니다. 1957년생 닭띠이고요 6남매 중 넷 째 딸로서 애교도 많고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자랐다고 합니다. 유난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아빠 같은 사람한테 시집간다고 했다고 합니다. 비록 할아버지 아홉 식수가 살면서 넉넉지는 못했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경주 최가입니다. 경상북도 경주가 저의 조상의 뿌리라고 합니다.
저는 말투도 서툴고 생김도 수수하지만 야무진 한국인입니다. 입국이후 14년 동안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저는 성격이 내성적이지만 조금은 활달한 편입니다. 좋아하는 색상은 핫 핑크, 하얀색, 태극기 파랑색, 빨강색을 좋아합니다.
♬저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지만 노래를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고국땅”이라는 자작시도 썼으며 이미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I love 코리아” , “언제나 가려나” 자작곡도 만들었습니다.
♪“고국 땅” 가사를 쓰게 된 동기는 중국에서 살 때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늘 우리는 우리의 뿌리인 고국(대한민국)에가 살아야 한다는 한 많은 사연을 들으면서 자라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고국으로 향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 가셨습니다.
세월이 십 여 년을 흘렀지만 저(최화자)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고국의 한을 품은 채 고향 땅에 잠드신 부모님을 사무치게 그리워 “고국 땅”이라는 자작시를 손수 썼습니다.
♬늘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만큼 자작시를 쓴지는 오래 됐지만 그냥 부모님이 그리울 때면 가끔 읽어 보군하였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작시에 곡을 부칠 생각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2010년 10월 17일 경기도 다문화한마당 ‘끼’자랑에 참여하였는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중 작곡가 ‘김덕’작곡가 선생님을 알게 되어 오늘의 “고국 땅”노래가 만들어 졌습니다.
♪제가 고국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저의 노래 소리가 바람에 실려 고향으로 날아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지구상의 수많은 동포들의 고국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고국 땅” 가사를 지었습니다.
♪앞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길이 막히면 에돌아가고, 넘어지면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뛰었습니다. 딸애의 뒤 바라지가 힘들고 안타까울 때면 고향의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늘“나는 그래도 부모님의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고 살지 않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삶, 하늘이 알아 준 걸까요?
2005년 8월 대학에 다니던 저의 유일한 살 부치인 딸아이가 드디어 삼성전자 디자인 그룹에 입사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고향땅에 잠드신 아버지어머니셨습니다. 이 가사를 쓸 때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