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하와이의 리틀 엘비스
본명 Peter Gene Hernandez, 활동명 브루노는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이다. 1985년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브루클린 출신의 퍼커셔니스트인 아버지는 필리핀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댄서와 무대에서 만나 결혼했고, 이후 평생 무대에서 살면서 항상 가족에게 음악적인 영감을 선사했다. 프로필에 따르면 브루노의 삼촌은 기타에 능하고 그의 형은 수준급 드러머라 한다. 재능으로 또 업으로 그렇게 무대이력을 쌓아온 가족으로부터 일찍 음악에 눈을 뜬 그는 곧 무대의 중앙에 서게 된다. 와이키키 해변의 한 공연장에서 꼬꼬마 시절의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불렀고, 이는 곧 지역언론의 화두가 되어 몇몇 타블로이드를 통해 ‘리틀 엘비스’로 소개됐다.
그의 엘비스는 아버지의 수집품목으로부터 나왔다. 엘비스의 전성기 그리고 당대의 흑인음악들은 아버지의 정신적 자산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동시대를 살면서 당시의 노래와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아이에게 설명하고 묘사할 수 있었던 가장 가깝고 영향력있는 선배였다. 음반과 TV와 각종 영상물을 접하면서, 엘비스로 시작해 프린스와 폴리스와 마이클 잭슨을 발견하게 되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브루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그들은 영웅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관중의 열광적인 반응이다. 어린날의 나는 객석의 여성을 녹여버리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공부하는 일을 즐겼다.”
작곡가: LA의 히트메이커
집에서 가족과 함께 20세기 팝의 아이콘을 순회하면서, 그리고 무대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있는 음악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그는 슬슬 좋아하고 열광했던 음악들과 작별한다. ‘자신의 음악’을 구상하는 단계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열일곱 고교졸업 시즌 꿈을 찾기로 결심한 후 자라왔던 섬을 떠나 LA로 이동한다. 도시는 고향과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하와이의 무대는 그가 ‘부르는’ 노래를 높이 샀지만, 회사와 스튜디오의 관계자들이 눈여겨본 것은 그가 ‘만드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솔로 커리어를 쌓기 위해 그는 도시를 찾았지만, 그는 ‘가수’가 아닌 ‘스태프’로 먼저 계약하게 된다. 어쩌면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이력이 되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그가 완성한 엄청난 히트곡, 그리고 히트에 따른 그와 관계자들의 후일담이 잘 말해준다.
몇 년 지나지 않은 과거를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 아틀란틱 레코드와 계약할 때 나는 무척 어렸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잘 모를 때였다는 얘기다. 후방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일단 데뷔했는데, 이는 산업에 점진적으로 발을 들인다는 뜻이기도 했고 내가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천천히 살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만큼 출중한 두 명의 동료(Philip Lawrence, Ari Levine)를 엮어 송라이팅 그룹이자 프로듀싱 그룹 스미징톤스(The Smeezingtons)의 골격을 완성한 스튜디오의 관계자 또한 동의하는 이야기다. “그의 최종목표는 솔로 데뷔였지만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쓸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친구였다. 가수라는 꿈과 그 이전의 작곡이라는 준비가 그를 더 발전적인 싱어 송라이터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작곡가로 뛰는 동안 그, 그리고 그의 프로듀싱 팀 스미징톤스는 엄청난 히트메이커로 급부상했다. 케샤가 피처로 참여한 플로 라이다의 ‘Right Round’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2PM 출신 박재범의 버전으로도 크게 회자된 B.o.B.의 ‘Nothin’ On You’, 트래비 맥코이의 ‘Billionaire’, 씨로의 ‘Fuck You’ 등 빌보드의 정점을 우습게 알았던 이 최신 히트곡들이 모두 그들 작업의 소산이다. 가끔 우리는 노래하는 사람 이상으로 작곡하는 사람, 편곡하는 사람, 그렇게 총체적으로 곡을 완성하는 프로듀서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을 만난다. 브루노는 언제부턴가 그 관심의 중앙에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만들면서 부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자 이미 노래를 인정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솔로: 차트의 지배자
세상이 그의 솔로 활동을 기대했다면, 송라이팅 이상으로 두드러지는 그의 ‘꿀성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B.o.B.의 ‘Nothin’ On You’, 그리고 트래비 맥코이의 ‘Billionaire’는 랩보다 인상적인 주요 멜로디 덕에 크게 흥했던 노래들이고, 그 주요 멜로디를 맡은 자는 곡을 만든 브루노 마스다. 한 평자가 “제이슨 므라즈에서부터 마이클 잭슨까지 다 해치운다”고 평판했던 목소리, 팝에 가까우면서도 소울의 무게를 동반하는 믿음직한 목소리, 더없이 화사하고 긍정적인 선율을 전달하지만 어딘가 슬픔과 어둠을 숨긴 목소리는 그가 말하는 작곡의 원칙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곡을 만든다는 건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곡을 쓴다는 것은 내가 굳게 믿고 있던 내면의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일이고, 이는 눈속임이 있을 리 없는 일이며 따라서 내가 품어왔던 거대한 진실을 말하는 일이다. 그리고 노래한다는 것은 그 진솔한 작곡의 과정을 털어놓는 일이다.”
그 진솔한 이야기는 이미 앨범 제목에 명시되어 있다. 지난해 10월 출반해 빌보드 앨범차트 3위로 데뷔한 솔로 앨범 [Doo-Wops & Hooligans]의 이야기로, ‘두왑’은 자신이 여성을 바라보듯 사랑했고 지금까지도 흠모하는 과거의 장르이고 ‘훌리건’은 오늘의 또래 남자들과 소통할 만한 관심사라고 그는 설명한다. 앨범의 노래 배열도 ‘두왑’과 ‘훌리건’이 교차한다. 낭만과 열정이 안배된 대표곡 ‘Grenade’와 ‘Just the Way You Are’의 한편에는 ‘Runaway Baby’를 비롯해 다미언 말리가 참여한 ‘Liquor Store Blues’, 그리고 씨로와 B.o.B.를 동반한 ‘The Other Side’ 같은 힘과 열정과 유대의 노래가 있다. 데뷔 이전 여러 가수 및 여러 작곡가 동료들과 여러 작품을 구상하면서 얻게 된 다채로운 감각과 표현이 마침내 앨범에서 제대로 터진 셈이다. 그는 어느 순간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
경험을 통해 원했고 또 실현이 가능했던 모든 스타일을 그는 모조리 토해냈고, 결과는 승리로 돌아왔다. 그는 한때 조금 먼 자리에서 1위를 관전했던 인물이다. 작곡에 참여했던 플로 라이다의 ‘Right Round’, 그리고 작곡가이자 보컬리스트로 관여했던 B.o.B.의 ‘Nothin’ On You’가 거둔 빌보드 넘버원 기록의 이야기로, 이는 곧 자신의 성과로 돌변했다. 일단 그의 첫 솔로 앨범은 3위로 순조롭게 데뷔했다. 첫싱글 ‘Just the Way You Are’는 4주간 1위를 기록했다. 사실 그보다 먼저 공개했던, 그리고 ‘Just the Way You Are’의 호응에 따라 다시 터뜨린 두번째 싱글 ‘Generade’ 역시 1위로 등극했다. 남자 솔로 가수가 앨범으로 데뷔하자 마자 이렇게 연속으로 싱글 두개를 빵빵 터뜨린 경우는 13년만에 처음이라 한다. 영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 10월 ‘Just the Way You Are’가 UK 차트 1위를 차지했고, 1월 17일 ‘Grenade’가 이어 1위를 찍었다. 그는 한때 스태프나 참여자로 모든 것을 이룬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노래로 영미권의 차트를 제압하는 무시무시한 독립체가 된 것이다.
여담으로 영국에서 쏟아진 호응은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브루노 마스의 데뷔 앨범 [Doo-Wops & Hooligans]는 아직 영국에서 뚜껑을 열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지난 10월 미국에서만 발매된 앨범이고, 국내에서 이제야 라이선스를 결정한 것처럼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풀기로 계획된 앨범이다. 여기엔 상업적인 계산이 따른다. 한 내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작곡가이자 피처 시절부터 성공의 싹이 보인 인물이고, 당연히 솔로활동에 대한 확실한 수요가 따를 만한 가수이며, 그리하여 활동의 롱런을 예상해볼 수 있는 블루칩이다. 2010년 가을 미국에서 우선 앨범을 공개하는 것으로 기반을 잡은 후, 이듬해 한해동안 세계 각국으로 그의 노래를 확산할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그의 레이블이 앨범의 세계 발매 시기를 2011년으로 굳힌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