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밥 짓는 연기가 퐁퐁 올라오던 오전이었는데,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땟국이 밴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연신 훔치며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고추잠자리 서너 마리가 원을 그리며 아이의 머리 위에서 날고 있었는데 빼꼼 열린 어느 토담집 사림문이 아이를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아무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으리오 당신은 나의 본질이죠 내가 느끼는 그대로 당신은 나의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사랑 이외 다른 모든 건 그냥 생겨난 부산물일 따름입니다.
그래요 새벽 이네요. 언제 보아도 싱그러운 당신은 하이얀 목련 잎사귀에 튀는 물방울 같아요
희붐한 여명 끝에 서있는 당신의 등판을 바라보면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져 온답니다
이른날 가을 어스름 내속에 숨어 있는 당신은 저리도 눈부신 햇발 같지요. 신이 있어서 나를 내려다보신다면 난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신같이 해맑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이예요. 찾아도 찾아도 허기지기만 하던 내게 당신은 어느날 내 삶의 근원이 되었지요 이제 그만 힘든 손을 내려요 내가 당신의 이지봉이 되겠습니다.
정오가 오면 우린. 시청 앞 분수대 도시의 잿빛 하늘 속에서 침통한 바람 소리를 듣는다 불모의 늪 아홉 송이 장미가 회색 풍경으로 남고 강 계단 끝머리 시든 햇살 속에 걸려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낙엽처럼 흔한 창부의 웃음이 있는 골목길에서 그는 풀피리 소리를 내었을까? 우린 서로가 비가 내린 탓이라 여기지만 늘 비 탓은 아니다. 털고 나오면 몹시 허망한 변두리 여관. 젖은 전봇대엔 뿌옇게 흐린 가로등이 걸려 있지.
너 비어서 더욱 순결하구나 한 움큼 얻어 저만치 떠나는 일모의 가을 하늘 뒤로 남기고 겨울 철새 남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애달픈 손수건 흔드는 너 비어서 더욱 순결하구나 말갛게 씻겨 햇살에 투명한 조약돌 몇 개 가슴에 안고 북풍 한설 벌거벗은 몸으로 온 겨울 견디어내는 너 비어서 더욱 순결하구나 어는 외진 곳에다 너의 슬픈 모습을 숨길 수 있으리오 벗고 벗어서 이젠 더 벗을 것도 없는 너의 아픈 몸뚱어리 그래도 너의 사랑은 늘 훈훈하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