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지 우리 사랑의 풀씨가 되어 흩어져야지 우리 이땅의 어디로엔지 안개처럼 피어나는 묻어둔 이야기며 구름처럼 많기도 했던 못다한 일들이며 묵묵히 남겨둔 채로 빈가슴 부벼댈 언덕을 찾아 떠나야지 우리 사랑의 풀씨가 되어 흩어져야지 기다림의 땅 한반도에 황량한 벌판에 흙먼지 날리어도 대지의 속살깊이 뿌리 내리고 찬연한 풀꽃 한송이 찬연한 꽃 한송이 피워내야지 떠나야지 우리 사랑의 풀씨가 되어 흩어져야지 기다림의 땅 한반도에
나는 가난한 소년 내 신세 타령은 별로 안하지마는 한참 투덜거리면 내 마음 후련해 세상 사람들 모두 거짓말과 익살만을 듣고 싶어해 내가 고향집을 떠나서 낯선 사람들과 무서워 떨 때까지도 나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었다네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 세계 속에 생활하면서 내 자신은 방황하였었다네 부모 형제 떠난 나의 처량한 이 신세를 반겨 줄 이 없는 이 세상에 나의 친구 또한 없다네 난 울었네 샌드백 두드리며 외로움 달랠거라고 외로움에 잠 못 이루면서 나의 고향집 생각에 추운 이 겨울도 포근한 고향집에 가고파 음 가고파 나는 지금 권투선수되어 링 위에 서서 날리는 주먹마다에 울분과 집념을 불 태우며 분노와 수치 속에 온 몸을 떨면서 링을 떠날 그 복서를 찾아 오늘도 뛰네
어둠이 내리는 거리 쓸쓸한 길 모퉁이 커다란 거미줄 위에 나비 하나 걸려있네 사람들 모두 떠나고 나비는 파닥이네 나 혼자 멍하니 서서 나비를 쳐다본다 *누가 저 거미줄의 나비를 구할까 들길 꽃길 마음대로 날려 보내 줄까 누가 저 거미줄의 나비를 구할까 푸른 하늘 마음대로 날려 보낼까 그 고운 꽃길을 두고 어디서 날아 왔니 그 고운 들길을 두고 어디서 날아 왔네
나의 지극히 고운 사랑이 그녀의 두눈을 흐리며 마지막 이별을 고할때 단번의 느낌으로 용서했고 그 아픔에 더욱 더욱 더욱 더 너를 사랑했다 나의 지극히 고귀한 사랑이 그녀의 두눈을 흐리며 마지막 이별을 고할때 단번의 느낌으로 용서했고 그 아픔에 더욱 더욱 더욱더 너를 사랑했다 * 사랑이 나를 떠날때 그 혼란과 슬픔이여 사랑에 빼앗겼던 나의 불쌍한 영혼이여 사랑이 나를 떠날때 그 혼란과 슬픔이여 사랑에 빼앗겼던 나의 불쌍한 영혼이여
새벽이슬로 부리를 씻는 산새를 보라 샘물처럼 맑고 고운 눈동자를 새벽안개에 머리를 씻는 들꽃을 보라 햇살처럼 눈부신 그 얼굴을 * 산새처럼 욕심없는 마음 들꽃처럼 꾸밈없는 마음 사람들아 이제 우리 모두 들꽃처럼 살아가자 산새처럼 자유로운 마음 들꽃처럼 향기로운 마음 사람들아 이제 우리 모두 산새처럼 살아가자 새벽이슬로 부리를 씻는 산새를 보라 샘물처럼 맑고 고운 눈동자를
긴 어둠을 뚫고 새벽 닭 울음소리 들리면 안개 낀 강물 따라 꽃등 들고 가는 흰옷 입은 행렬 보았네 때론 흐르는 물이 막히우고 때론 흐르는 길이 멀다해도 아아 흐르는 일이야 우리 행복하지 않나 아아 우리의 땅 되살리고 그 길 따라 님 오시면 꽃등 들어 불 밝히리라 님 오실 길 불 밝히리 꽃등 들어 님 오시면
가네 가네 떠나가네 찔레꽃 핀 강 길 따라 가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새벽 강물 부르고 덤불 같은 우리 어메 손짓에 눈물이 앞을 가려 풀꽃 흐려지는 서러운 길 서울길 가네 어메 어메 나는 가네 우리 아베 들길에 두고 만나고 헤어지는 굽이굽이 섬진강 물결 따라 기적소리 울리며 서울길 가네
‘직녀에게’와 ‘목련이 진들’을 부른 가수 박문옥(52)씨가 22일부터 5대 도시 순회공연을 펼친다. 1977년 〈문화방송〉 대학가요제에서 ‘저녁노을’로 입상한 뒤 노래·작곡·연출 세 분야를 넘나든 그의 음악 여정 30년을 되돌아보는 무대다.
78년 전남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박씨는 음악에 집중하려고 미술 교사를 단념했다. 이후 20여년은 ‘소리모아’ 그룹으로, 10여년은 혼자서 활동했다. 인기에 연연하기보다 감성적인 노래를 만들려 애썼다. 이런 소신으로 〈양철매미〉 〈운주사 와불 곁에 누워〉 〈꽃잎 인연〉 〈노래 한 잔〉 등 음반 6장을 냈다. 또 87년부터는 소리모아 스튜디오를 열어 가수 김원중·정용주·정세현 등의 음반 60여장을 연출했다.
박씨는 “소리의 매력을 찾는 과정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