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나에게도 사랑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외로움 앞에서는 늘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조차 지켜낼 수 없던 나약해진 마음은 늘 안 좋은 결말을 끌고 왔고, 커다란 우울 속에 잠식된 나로 인해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던 사람이 서서히 검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지우기 힘든 죄책감까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야 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두려워졌고, 사랑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조금이라도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우울의 터널 끝에서, 하루에 한 번이라도 햇빛을 맞으며 몸을 움직이는 일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오염됐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썩어가는 줄만 알았는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가다 보니 조금씩 정화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사랑과 낭만을 갈구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세계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깨지지 않을 믿음을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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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사랑과 낭만.
여기 여전히 사랑과 낭만을 갈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 갈구는 결국 노래를 만들게 한다. 불안한 마음이 있고, 확신도 없다. 의심하기도 하고 자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 마음의 과정이 고스란히 노래를 통해 표현된다. 그래서 너무나 솔직한 노래이기도 하다. 그 마음을 읽고 듣는 일은 즐겁다. 정제된 언어로 쓰인 가사와 빼어난 멜로디를 품고 있는 노래는 오랜 시간 불리고 들린다.
아무것도 거스르지 않았던 삶. 학창 시절의 안희수는 성인이 돼서도 그렇게 살았다.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취업했다. 똑같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노래가 그에게 왔다.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전히 그가 일상을 거스르지 않고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면 지금 싱어송라이터 안희수는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노래 잘하는 안희수로만 남았겠지만,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는 용기가 있었다. 충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것이 충동이 아니게 한 재능이 음악가 안희수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쓰는 가사를 오래 들여다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멜로디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생겨났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그가 만들어온 음악은 적잖게 사랑받아왔다. 굳이 분류하자면 안희수는 인디 씬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이지만, 그가 만들고 부르는 음악은 훨씬 더 큰 확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쌓이고 그가 발표한 작업물이 쌓이면서 안희수가 만든 세계는 더 공고해졌다. 그가 만든 언어와 선율을 기다리고 호의를 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또 하나의 큰 미덕은 그가 성실함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데뷔 이후 그는 쉼 없이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 정규 앨범, EP, 싱글, 각기 형태는 달랐지만 한 해도 쉬지 않고 노래들을 발표해왔다. 그 시간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안희수는 보통 포크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이야기되지만, 조금씩 장르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EP [망가진 나침반을 들고](2023)에는 모던 록과 R&B 스타일의 음악이 담겨 있었다. 정규 앨범 전에 먼저 발표한 싱글 ‘푹신한 마음 철없는 새벽’ 역시 풀 세션으로 녹음한 모던 록 트랙이었다.
그래서 4년 만에 발표한 [오염된 마음으로부터]는 안희수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첫 곡 ‘좋은 일’에서 들려오는 사운드는 잘 만든 모던 록 음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소리들이다. 겹을 만들어가는 사운드 안에서 안희수의 목소리는 아련함을 잔뜩 품고 부유한다. 부유하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멜로디가 있다. 이어지는 ‘푹신한 마음 철없는 새벽’은 안희수의 모던 록이 얼마나 매혹적인지를 잘 들려준다. 그가 데뷔 이후 지속해온 정서적인 부분이 밴드 사운드와 함께하면서 사운드만큼이나 매력도 증폭한다. 앞으로 이 소리가 어떻게 더 확장되고 변화해갈지 기대하게 만드는 노래들이다.
이어지는 ‘당연하지 않은 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안희수의 세계다. 어쿠스틱 기타 안에서 그는 조곤조곤 자신의 언어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푹신하게 기대게 만드는 노래들이다. ‘최선’, ‘너에게서 다시 태어나는 법’은 마치 1990년대 ‘가요’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익숙한 듯하지만 시대적 간극으로 오히려 신선하게 들린다. 이 노래들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은 안희수가 만든 멜로디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들 줄 알고 이는 대부분 처음 그의 노래를 듣게 하는 사람들까지 매료시킬 수 있는 중요한 힘이기도 하다.
‘정화’는 안희수의 성장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노래다. 인터루드 형식의 ‘습관’에서부터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머리를 맞댄 안희수는 이 노래에서 우아한 실내악 한 곡을 완성해냈다. 기타와 베이스 대신 자리한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연주는 시끄러운 마음을 잠시 치워두고 산책을 통해 얻게 되는 ‘정화’ 그 자체가 된다. 그런 정화의 순간은 앨범에서 몇 번이고 찾아온다. 안희수는 복잡한 마음을 노래하지만, 그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은 오랜 여운을 남기며 마음을 정화시킨다. 그래서 먹먹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도(xxxx), 내가 누구인지를 물어도(Who Am I), 나의 밤에 빛이 되어달라고 노래해도(마음, 밤) 마음이 움직인다.
앨범의 마지막 곡 ‘세상엔 말뿐인 말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니까’에는 ‘푸른 멜로디’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어떤 밤들은 정말 파랗게 보이기도 한다. 그 밤 안에서 안희수의 푸른 멜로디들이 떠돈다. ‘푸른’이 영어로 ‘blue’라는 걸 생각하며 ‘우울한 멜로디’라고 읽어보기도 한다. 첫 곡에서 “내 모습 있는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라고 묻던 그는 마지막 노래에서 “네가 주는 이 사랑 속엔 푸른 멜로디가 있으니 자주 함께 부르자”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두렵고 상처 받으면서도 여전히 사랑과 낭만을 찾는 이 복잡한 사람의 마음. 그럼에도 결국 희망을 놓지 않아 온 안희수의 정서가, 안희수의 음악이 더 확장된 세계 안에서 여전하게 펼쳐진다. 그 세계는 더없이 견고하다.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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