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낭만시대 작곡가.
19-20세기 후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러시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1873년 러시아의 세묘노바 Semyonovo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대한 기초를 쌓았다.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그는 12살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고 즈베레프 N. S. Zverev에게 피아노를, 아렌스키에게 작곡을 배웠다. 1892년에 그는 오페라 <알레코>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뛰어난 연주자로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한편 동시대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그에게 있어서 든든한 후원자이며 격려자였다. <피아노를 위한 환상적 소품집 Piecesfantaisies op. 3>,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환상적 회화 Fantaisietableaux op. 5(1893)>, 교향시 <바위(1893)>, <차이코프스키를 추도한 슬픔의 3중주곡(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1892)> 그리고 그밖에 많은 가곡들에는 그의 음악적 영향력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1893년 차이코프스키가 운명했을 때 라흐마니노프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 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1897년 그는 교향곡 1번을 초연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 일을 계기로 라흐마니노프의 창작 활동은 3년 가까이 정체하게 된다.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던 그는 닐스 달 Niels Dahl 박사에게서 정신 요법의 치료를 받게 되는데 그 이후 1901년에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작곡해 글린카상을 수상했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곡으로 꼽히며 많이 연주되는 레파토리 중에 하나다.
1901년부터 1917년까지 이 기간은 그의 창작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피아노와 첼로로 위한 소나타(1901)>, <피아노를 위한 쇼팽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2(1903)>, <샬리아핀을 위하여 작곡한 오페라 인색한 기사 op. 24>, <오페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교향곡 제2번(1907)>, <뵈클린의 그림에 기초한 교향시 죽음의 섬(1909)>,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1909)>, 그리고 특히 주목할 만한 곡으로는 <2개의 전주곡집(op. 23>, <회화적 연습곡집 E´tudestableaux op. 33>, <두 곡의 소나타(1907, 1913, 개정판 1931)>등의 작품이 있다.
한편 19세기 말에는 종교음악에서도 새로운 부활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그는 이 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독창과 무반주 합창을 위한 곡, <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톰의 전례 op. 31(1910)>과 <만도(晩禱) op. 37(1915)>는 바로 이러한 점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1917년 겨울에는 스웨덴으로 연주여행을 갔다가 망명을 했으며 이어 1928년까지는 미국에 거주했다. 다시 프랑스와 스위스로 건너갔다가 1935년에는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귀화했다.
동시대의 작곡가 스크리아빈, 라벨, 바르톡과 달리 순수조성체계를 고집했던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 시대의 쇼팽,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다음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낭만주의 음악가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는 일도 즐겼는데 이러한 점은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모방을 주된 작업으로 생각했던 작곡가가 분명 아니며 그의 작품이 그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특히 그의 피아노 작품은 그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by denk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