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흐르는 깊은밤의 강, 중심에 일그러진 달빛만이 스산한 바람에 여린 숨을 일렁인다. 갈길 멀어 푸념으로 잠시 바쁜 걸음 멈춰 주저 앉아 바라보니 그제서야 칠흑속에서 의지해 온 것은 그 달빛 하나뿐이었음을 깨닫는다. 간간히 내뱉는 강의 숨소리에 미처 꺼내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말없이 꺼내 풀어놓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어디로부터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멈춘듯 멈추지 않은듯 참으로 초연히도 흐르는구나. 그 속에는 한때의 처절했던 풍랑도 따사롭던 봄날의 기억도 담겨 있을 것이고 누군가의 또 무엇인가의 시간도 계속해서 담겨가겠지.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넓은 품으로 온전히 끌어 안으며 일체의 동요도 유난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지나야 이처럼 평온할 수 있을지...
늘 같은 모습이나 어제 흘러간 강물이 오늘 흘러갈 강물이 아니듯 내일 흘러갈 강물 또한 오늘의 강물과 같지 않을 것이다. 새로이 이어지는 그 흐름을 하루하루 따르다 보면 어느새 내 닿고자 하는 곳에 이르는 날이 다가올테니 그땐 나의 어린 푸념도 강물속으로 깊히 잠겨 하나가 되리라. 하니 의연하진 못할지라도 재촉하지 않을 일이다.
다시 부는 바람이 날 세우니 옅은 미소 한모금 머금어 달빛에 건내며 그저 흐르리. 그저 흐르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