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난방을 켜고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다. 봄부터 씨를 내려 뜨거운 공기에 부풀어 오른 슬픔들을 수확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어느 날부터 가을을 타는 게 아니라 추위를 타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기대나 기도도 없이 스스로 여물고 강해진 슬픔은 바닥의 냉기처럼 등줄기를 몰래 타고 천장을 향해 달린다.
여름에 시작한 계절 프로젝트가 기어이 해내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꽤 큰 시간의 장 속에 기억 인자들을 뿌려놓고 있다. 2022년의 순간들은 박제되어 전시될만한 가치가 있었고 언젠가 흘러온 기억 인자들을 맡으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라는 껍데기는 박제하고 받아들임이라는 내용물은 빼놓아 간직하려 한다. 가두고 거둔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가을이라고 하니 가두고 거두며 나아가련다. 목소리가 슬프게 들린다면 그건 가을 탓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