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영의 풍류]
한때는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종류의 풍류가 존재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어느 풍류객들이 서로 처음 만나 음악을 시작하여도, 각자의 개성이 담긴 선율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바탕의 풍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줄풍류 안에는 각자의 독창성과 음악성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며, 세속의 잣대를 떠나 오직 음악 안에서 마음을 나누었던 멋스러운 선비 정신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음악은 이미 창의적이며 자유로웠고, 우월하거나 하등함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현재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음악의 참 모습 또한 그런 것이 아닐는지요.
이 앨범에는 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는 ‘영산회상’ 전 바탕과 저만의 방식으로 조합해 본 ‘고수영의 풍류’를 짧게 담았습니다. 이 미약한 시도를 발판으로 보다 많은 풍류객들이 흥겨운 마음으로, 또한 진지한 태도로 저보다 더욱 훌륭한 그들만의 풍류를 만들어 나가고, 그것을 통해 악보 안에 머무는 음악이 아닌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풍류 음악을, 그리고 순수하고 고귀한 풍류 정신을 향유하길 바래봅니다.
[고수영의 ‘雲從龍 風從虎’(운종룡 풍종호)]
정악 합주에서의 해금은 선율을 통해 전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관악기와 현악기 사이의 공간을 메우며 음악을 풍성하게 만드는 정악 해금의 역할은 ‘雲從龍 風從虎’(용 가는데 구름 가고, 범 가는데 바람 가듯)라는 표현과도 같이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감싸고 어우러지게 하여 음악을 이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금의 역할은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금, 피리와 더불어 관악기의 하나로 인식되는 해금은 결국 다른 관악기들이 갖고 있는 독주 레퍼토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대금과 피리로 가능한 음악이라면 해금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오래된 의문에서 출발한 이번 작업은 정악 해금 레퍼토리의 확장을 위한 시도입니다.
상령산풀이, 생소병주 수룡음, 헌천수 등은 관악기 독주 또는 중주를 위한 대표적인 악곡들입니다. 해금으로 이 멋진 곡들을 잘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대금, 피리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이 곡들을 풀어내 들려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저의 연주가 하나의 계기가 되어, 정악 해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연주자들의 시도가 이어지기를 바래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