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단단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정은’, 그 위에 온 몸 그득 현대음악을 쌓아올려 형성된 신성한 음색. 마음에서 숙성된 오랜 이야기는 시로 변모하였다가 드디어 노래가 되다. 공간을 뒤흔들어 착실하게 표현해내는 층층이 쌓인 시간의 흔적들. 이는 목소리가 상기시키는 진정한 세상이다. 여기 울림으로 삶의 복기(復棋)가 시작된다.
-이정배(문화예술비평가)
김정은의 음악은 전통적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전통적인 음악을 구현하기 위해 국악기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EP [어느새]를 채우는 악기는 대부분 기타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거나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연결한 곡들은 블루스, 록, 재즈, 포크, 팝의 사운드를 두루 활용한다. 음악의 자장은 넓다.
그런데 곡마다 다른 장르의 방법론에 김정은의 노래가 더해질 때, 노래는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를 껴안는다. 곡에 흐르는 장단은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호흡이다. 소리꾼으로 활동하는 김정은은 판소리의 발성으로 노래하지 않지만 몸에 익은 판소리의 호흡은 곡의 장단을 부각시키며 노래를 구성지고 유려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따금 들을 수 있었던 국악가요 스타일의 노래를 떠올리지는 말기를. 한국의 사이키델릭 록을 탐닉하며 한국 록의 계보를 이어온 록커 사토 유키에는 김정은의 노래에 소박하고 영롱한 연주를 더해 김정은의 노래가 다른 장르의 사운드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어느새]를 시작하며 끌고 가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그렇고, [풋사랑]의 몽환적인 코러스가 그렇다. 일렉트릭 기타와 장구의 협연으로 만드는 [풋사랑]의 간주도 유난스럽지 않지만 사이키델릭한 록의 여운을 불어넣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노래를 침범하지 않는 연주는 김정은의 목소리가 지닌 순정을 지키면서 노래 밖에서 다른 질감을 입힌다. 그래서 [달]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빚은 이중주의 매력으로 김정은의 노래는 더 질박하게 완성된다. 2019년의 전통음악이 마땅히 선택해야 할 변주이다.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더한 [봄비]도 지고지순한 그리움의 노래에 고졸한 맛을 더한다. 처음부터 블루스 기타의 끈끈한 사운드로 무게감을 불어넣는 [감우]는 김정은의 노래와 보컬, 사토 유키에의 연주가 가장 선명하게 만난 곡이다. 허난설헌의 시 속 슬픔을 빗방울처럼 젖게 하는 연주와 김정은의 소리, 그 앙상블은 음반에 강렬함을 더하고 더 많은 노래를 듣고 싶게 한다. 소리꾼 김정은의 또 다른 발걸음이 이제 시작이다. 계속 또렷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기를. 오래 오래 걸을 수 있기를.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살아가다보면,
단 한번 듣고도 잊히지 않는 목소리를 지닌 가수를 만나기도 한다.
그것은 운명일 수도 있겠지만 삶의 소박한 기쁨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김정은은 원래 박녹주제 흥부가와 강산제 춘향가를 하는 판소리꾼이다.
사실은 판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 대중가요를 부르는 그녀의 노래에 귀를 빼앗겨버렸다.
애당초 소리꾼으로 태어난 듯한 그녀는 판소리 뿐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목끓는 소리에 담아 노래하고 있었다.
첫 소리는 판소리였지만 현재의 삶은 또 다른 자신의 소리를 빌어 노래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운명의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기에 소리꾼으로서의 목은 버릴 수 없지만
그 목에다 자신이 겪고 있는 한의 무게를 얹어 세상에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6년 전에 냈던 싱글앨범에서도 피아노의 단출한 선율에 담긴 소리로 사람들의 심장을 울컥이게 만들었다.
기획사의 도움이나 다른 홍보, 마케팅 없이 노래의 힘 하나로 멜론의 국악차트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다른 모든 것을 빼앗겨도 버릴 수 없는 목숨같은 것이다.
그 삶을 지탱해주는 붉은 실이라서 죽을만큼 힘들어도 끝끝내 노래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누군가에게는 오후의 낙서처럼, 어떤 이에게는 한낮의 낮잠처럼 다가오겠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한숨이 들린다.
실망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의 생에서 노래해야겠다고 버티는 큰 숨이다.
김정은의 노래는 아마도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이유와 싸워가며 계속 들려줄 모양이다.
그래서 계속 더 들어야겠다.
- 데자뷰(음악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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