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브래너, 레위지파' [The Glory of the Cross]
1
아마도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라 할 수 있겠다. 복음을 노래하는 찬양은 언제나 강력하다는 사실 말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기록된 수난 기사만큼 그리스도의 자비를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글이 또 있을까? [십자가의 영광]은 바로 이사야의 예언을 토대로 쓰여진 찬양이다.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그는..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참으로 오묘한 말씀이다. 성경의 수많은 기사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하여 반문하듯 [십자가의 영광]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눈 주의 아름다움 봅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그 아름다움
내 눈 주의 영광을 봅니다
주 십자가 내 눈 여셨네
사실 십자가 수난의 겉모습에서 우리가 사모할만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겠다. 십자가는 저주요 수치와 고통이기 때문이니.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 자비의 아름다운 마음과 구원의 영광스러움을 본다. 그가 저주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것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복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능력이다.
그러면 이제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이 진짜로 그러한가?
"그는..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아니다. 그는 아름다우시다.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능력이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만을 흠모하는가? 그가 진정 아름다운가? 어떠하든지 그의 영광스러운 십자가를 찬양하자. 복음을 노래함은 변화의 능력이니까.
난 믿네 주 십자가의 능력
난 믿넨 주의 사랑의 능력
주 보혈 날 깨끗케 치유해
내 눈 보네 십자가의 영광
2
아마도 많은 예배사역자들이 공감할만한 고민 중 하나는 찬양 선곡에 대한 것이겠다.
예컨대 '어떤 노래를 선곡해야 예배에 모인 회중의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질까?'와 같은 고민이다. 번번이 자신의 문제와 연약함, 정죄감과 수치심에 고정되고는 하는 우리 눈이 십자가 위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은 일종의 예배사역의 임무처럼 보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것은 예배인도자들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회복을 갈구 하루 때 찬양을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많은 예배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레위지파 스캇 브래너 목사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와 같이 레위지파의 찬양 [십자가의 영광]은 복음 그 자체를 선포하고 고백하는 찬양이다.
난 믿네, 주 십자가의 능력
난 믿네, 주의 사랑의 능력
주 보혈, 날 깨끗게 치유해
내 눈 보네, 십자가의 영광
복음을 노래하는 찬양은 언제나 강력하다. [십자가의 영광]을 찬양하며 예배할 때면 믿음 가운데 영적인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향해 옮겨지고 그 사랑으로 회복되는 것을 경험을 하게 된다.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