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소년고백
어렸을 적 나는 신앙이 두터워질수록 여러가지 감정에 무던해지거나, 그런 것들을 초월하여 사는 슈퍼맨이 될거라 생각했다. 내 맘에는 기쁨만이 넘치고, 슬픔과 분노, 우울, 무기력함 등은 자리할 곳이 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감정선은 예민해졌고, 생각은 많아졌으며, 신앙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여러가지 감정에 부딪치고 어두운 영혼의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앙의 세월이 깊어가도, 감정을 다루는 것은 여전히 서툴렀다.
그렇게 부스럭 부스럭 20대를 지내고, 30대가 되어보니 여러가지 감정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감정에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 형 누나들, 동생들도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단순히 시험, 또는 고난이라고 쉽게 해석하지 않게 됐다. 종종 찾아오는, 우리가 부정적이라 느끼는 슬픔, 우울, 분노, 그 모든 것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임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다.
나는 한편으로, 이것 또한 나의 신앙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 신앙은 단순히 믿음에 과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라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이며,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과정이다. 나는 때때로 슬프고, 때로는 분노한다. 때로는 겨울 나뭇가지처럼 파르르 떠는 연약한 인간이며, 간사하게도 때로는 절대 아스러지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착각한다. 이 앨범은 그런 나의 시간과 기억들, 감정들을 기록한 일기장이다.
찬양이라 부르기 어렵지만, 이것 또한 나의 신앙고백이라 생각하기에, 어리숙한 소년의 이미지를 덧붙여 [소년고백]이라고 이름지었다.
바라기는, 종교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탁탁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을 넘어설 믿음이자 힘이 되어주지만,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죽이기도 한다. 그럴 때 종교는 종종 폭력이 된다. 아파하는 친구에게 항상 성경책을 펴줄 수 없듯이, 우리는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때때로 배고픈 이들에게 설교가 아니라 빵을 주신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선택하신 예수님처럼, ‘인간성’과 ‘인간애’와 같은 맛스러운 감정들이 우리 신앙에 감칠맛을 더해준다면 좋지 않을까.
모두 따뜻한 가을을 보내길 바라며,
2020. 10. 13. 먼슬리쌈, 김요한
[수록곡]
_
1. 나일 수 있어
우린 모두 날개를 가진 존재다. 다만 날개가 피어나는 시기가 다를 뿐.
우린 누구나 방황하고, 불안해한다. 언제쯤 내 날개는 펼쳐지는 것일까 하고.
우리들은 기도한다. 하나님 저에게 꿈을 주세요.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 백성이래요.
저도 하고 싶은 게 필요해요.
우리들은 절망한다. 내 날개는 여전히 펴지지 않았고, 때로는 보이지 않아서.
괜찮다. 아직 날지 못해도, 우린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아직 날지 못하냐며 비웃거들랑,
너무 걱정 말아라.
늦게 날더라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늦게 날더라도,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우리내 존재는
날개짓만으로 판가름짓기엔 너무 무겁다.
_
2. 겁쟁이의 기도
나는 종종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생각했다.
재능도, 마땅히 잘하는 것도 없고,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그게 1절의 가사이고,
그때 내가 경험한 은혜가
2절의 가사이다.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볼만큼의 여유 조차 없을 때
문제 자체에 갇히게 된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들어
산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
어느새 내가 가진 게 이미 많은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고
문제는 작아진다.
우린 이미 충분하다.
그분이 우릴 위해서 기도하신다.
걱정하지 말라고,
네 앞에 있는 오늘의 기쁨을
보물을 놓치지 말라고.
_
3. 누가 나에게 와서
큰 슬픔은 우리를 눈물의 바다로 이끌지만,
잔잔한 슬픔은 몸과 마음, 시간 모두를 적신다.
나는 종종 이 잔잔한 슬픔에 갇혀 멈춰진 시간을 살았다.
세상은 흘러가고, 나는 이유 모를 슬픔에 홀로 멈춰있었다.
창밖으로 비춰진 세상을 보며, 나는 멈춰있는 자신이 불안하고 미웠다.
움직일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빨리 일어서서 나도 뭔가를 해야 할 텐데
하고 속으로 압박감을 삼켰다.
잔잔한 슬픔이 무서운 이유는,
나로 하여금 내가 왜 슬픈지 이유를
해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슬픔에 때때로 놀라곤 한다.
신앙인일지라도 말이다.
_
4. 우리 잠깐 쉬어가자
우리는 종종 쉬어가야 한다.
여기서 대상은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너와의 관계에서도
때로는 닿지 않고,
미움이 사랑을 삼킬 때가 있다.
내가 너무 미워질 때,
사랑하는 너도 너무 미울 때
믿어왔던 하나님도 너무 미워질 때
잠깐 쉬어가야 한다.
여기까지 잘 걸어온 사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뒤를 돌아봐야 한다.
담은 넘어가면 되는 거니까.
_
5. 내가 널 위해 기도할게
이 노래는 아픈 친구를 위한 기도문이다.
아프면 참 서럽다. 마음이든, 몸이든 아프면
의욕도 없고 입맛도 없다. 그렇게 누워있는 친구를 생각하노라면,
나는 이런 기도문이 떠오른다.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
내가 대신 해가 되면 좋겠다,
나도 같이 울었으면 좋겠다.
널 위해 기도할게, 좋은 목소리로
널 위해 기도할게, 그분 듣도록.
나는 우리의 기도가
솔직할 때 가장 힘이 있다고 믿는다.
_
6. 눈물을 흘려요
올 여름에는 비가 참 많이 왔다. 나는 종종 비를 보며, 슬픔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비는 흐르는 눈물과 닮아서 슬픔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고보면 내가 슬픔이 많은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비가 내릴 때는 비를 맞으면 그만이다.
슬픔이 찾아오면 울면 그만이고.
다만 비는 언젠가 그치기 마련이듯,
우리의 슬픔도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뚝, 하고 아이의 울음을 달래준 부모님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뚝.
너무 오래 울지 말자. 가끔은 신앙도 슬픔을 이기기엔
슬픔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웃음)
장마 지나고 가을이 왔다. 겨울도 올 것이고, 봄이 되면
또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듯 다들 옷을 주섬주섬 꺼낼 것이다.
버티기 힘든 시간이 있다.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더 있나.
하지만 그것이 믿음이 아니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내 인생이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선물이 아니던가. 그대 슬픔이 그대를 삼키지 못하리라.
주님도 때로는 우셨다고 한다.
그러니 때로는 눈물을 흘리자.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Thanks to]
작은 미니앨범이지만, 이 앨범은 저에게는 새로운 생일을 맞이하는 것처럼 아주 큰 선물입니다.
어수선하고, 거친 곡들이 잘 다듬어질 수 있도록 편집에 수고해준,스승이자 친구인 화목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합니다. 누군가의 수고로 나는 몇배로 아름다운 시간을 경험합니다.
먼슬리쌈이라고 칭하기엔 너무 귀한 존재들인 예원, 예진, 소현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생이란 여정에 함께 길을 가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어디에선가 먼슬리쌈이라는 팀을 응원하고, 또 우리의 음악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떨어져 있어도, 한 음악으로 같이 만나고 즐거워하며 은혜를 누릴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모든 생각과 마음 곳곳에 침투하시고, 침 삼킬 때도 놓지 않으시는 주님.
놓지 않아주심에, 여전히 거기 계셔주셔서, 영원히 내 미소는 잃을 길이 없습니다.
나의 모든 노래는 당신으로부터, 또 당신을 향해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