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명인의 삶과 예술
글/박환영(부산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전설의 인물”
그를 어떤 이들은 그렇게 부른다. 실제로 그에게는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깊은 심연처럼 경외스러운면이 있다. 윤윤석, 박종선, 김일구 산생과 함께 당대의 아쟁4인방 중 한사람이면서도 전혀 세간에 드러나 있지 않은 살아있는 전설의 인물인 셈이다.
박대성 명인(1938.6.25 - 현재)은 전남 진도의 밀양 박씨 가문 박동준씨의 2남2녀 중 작은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여성국극계의 자매스타였던 박보아가 바로 큰누님이며 박옥진은 작은 누님이 된다. 또 형님인 박병기는 국악협회장을 지냈으며 조카인 김성녀, 성애, 성아도 국악계의 큰 그릇들이다.또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 명인과 진도씻김굿 인간문화재인 박병천 명인과도 집안 일가가 되는 등 가히 국악계의 큰 가문이라 아니할 수없다.
많은 음악인들이 음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그러하듯 박대성 명인 또한 비슷하다. 아쟁소리에 이끌려 학업마저 포기할 지경에 이른 동생을 보다 못한 박보아 누나는 음악 하는 것을 한사코 말렸다. 그러나 그가 결코 뜻을 꺽지 않자 재주가 없으면 아예 관두게 할 작정으로 이소희(김윤덕의 부인으로 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 여러 악기를 두루 잘 다루었음)선생에게 데려가 시험적으로 아쟁을 배워보게 하였다. 그러나 진양 몇 장단을 가르쳐본 후 이소희 선생은 이 사람은 재주를 타고났으니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하는 수 없이 허락하며 기왕 하려거든 한갑득 선생께 거문고를 배우라 하였다. 왜냐하면 한갑득 명인은 바로 친 매형 즉 박보아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문고 학습은 얼마안가 관두게 되었다. 한갑득 선생이 워낙 술을 좋아했던지라 학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자꾸만 끌리는 아쟁소리에 미련이 더 컷던 것이다.
대개 명인들의 학습방법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초창기에는 거의 독학으로 마스터 하였다. 당시에는 수많은 여성국극단체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악사 품귀현상이 벌어져 어느 단체를 가든지 환영을 받았다. 이러한 환경은 오늘날 많은 명인들을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러 유파의 산조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한일섭이란 걸출한 인물은 오늘날 아쟁산조의 산파역을 하게 된 인물로써 아쟁의 윤윤석, 박종선, 박대성 등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들 아쟁 3인방이 한일섭을 스승으로 섬기게 된 계기 또한 흥미롭다.
각자 여러 국극단체에서 활약하던 이들에게 여러 선배 음악인들이“스승이 없이는 뿌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동시에 한일섭 선생을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한다. 그러므로 세 사람의 가락은 비슷한 부분도 많으며 한일섭제의 가락에 각자의 개성에 따라 자기류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한편 김일구 명인은 장월중선 선생이 스승이 되며 서용석 명인은 정철호 선생이 스승이 되므로 전혀 다른 바디이다.
오늘날 여러 유파 가운데 유독 박대성류 산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박대성 명인이 일찍부터 부산에서 생활한데서 기인한다. 더구나 세태에 환멸을 느껴 음악생활을 접고 8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버린 관계로 그의 산조가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10여년이 넘는 결코 짧지 않은 타국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다시 귀국한 그는 부산대학교와 개인연구소에서 꾸준히 제자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다시 그의 산조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없던 세월동안 국악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국악관현악단의 시대가 정착되고 온갖 퓨전이 난무하는 등 예전의 공연환경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달라진 공연환경만큼이나 음악연주 형태도 다양해졌다. 다양해지다보니 깊이 있는 음악적 학습이 부족해지고 그러다 보니 예전 같은 명인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사라져버렸다. 허나 “명장 밑에 졸장 없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박대성 명인은 그야말로 진정한 아쟁의 대가이다. 그는 음악적 깊이뿐 아니라 아쟁의 활대(유미)쓰는 법을 많이 연구한 관계로 활대 다루는 방법이 아주 독특하고 섬세하다. 성음이 진부하지 않고 아주 깨끗하며 깔끔하다. 특히 이러한 성음은 창작음악 연주에 아주 적합한 톤 칼라라 할 수 있다. 또한 우조와 계면성음이 분명하며 즉흥음악에 아주 대단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박대성 명인의 음반이 몇 번 나올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무산되어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이제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됨을 아주 다행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 녹음:2005년 11월 12일 서울 훈스튜디오.
[수록곡]
01.아쟁산조 -짧은산조 - 진양조 / 03:58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 01~04박대성류 짧은 산조가 다른 유파의 산조와 다른 점은 긴 산조를 짧게 줄인 게 아니라 가락 자체를 긴 산조와 다르게 구성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긴 산조보다 더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02. 아쟁산조 -짧은산조 – 중모리 / 02:54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03. 아쟁산조 -짧은산조 – 중중모리 / 02:32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04. 아쟁산조 -짧은산조 – 자진모리 / 02:46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05. 아쟁산조 -긴산조 – 진양조 / 09:18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 05~08 대체로 무난하고 평이한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편인데 이는 다분히 배우는 사람을 배려 한 것이라 한다.
06. 아쟁산조 -긴산조 – 중모리 / 04:31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07. 아쟁산조 -긴산조 – 중중모리 / 03:54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08. 아쟁산조 -긴산조 – 자진모리 / 04:46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09. 아쟁 시나위 / 15:26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 대개의 즉흥음악이 그렇듯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경우 흐드러지게 흠뻑 젖기가 쉽지 않다. 연주자 본인이 즐겨 연주하는 가락을 가져가지 못해 몹시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이대로도 그냥 좋을 뿐이다.
10. 아쟁독주 – 사모곡 (일명 - 다스름 세월) / 04:15
- 아쟁:박대성 | 장구:박환영
- 독특한 활대쓰기가 잘 드러나 있으며 아주 진한 계면으로 되어 있다. 곡 전반에 걸쳐 가슴이 저리도록 진한 고독이 짙게 배어나온다. 녹음 시작시 다스름(세월)으로 녹음했지만, 지금은 사모곡(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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