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수면제, 담배, 커너칼. 모텔 아주머니, 미안하지만 난 오늘 여기서 죽어야겠어요.
러시아, 마피아, 사내라는 그대가 약만 준다면 상관없습니다. 내 몸엔 구멍이 많아요."
-'우울증 연대기' 가사 중
기치는 미니멀 포크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로 마음의 언캐니한 풍경을 숨쉬듯이 노래한다.
6년 만의 신작인 이번 앨범 '온-몸'은 우울증과 알콜의존증, 약물중독, 자살시도로 이어진 공백의 시간 이후 손목에 남은 흔적과
온몸의 기억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도이다. 기타 하나와 목소리, 스산한 음들과 애도의 단어들을 통해 질병으로서의 우울증과 그것을 안고서 살아가는 일의 허름함과 괴팍함을 기록했다.
이 기록들은 또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여자, 청소노동자, 가정폭력생존자, 정병환자 같은 여러가지 정체성이 혼재하는 삶의 순간들을 담담하면서도 가감없이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연대기의 형식을 차용해 풀어간 이 앨범은 각 곡이 배치된 순서에 따라 유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앨범 '온-몸'은 타이틀곡인 '나의 손목'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이 앨범은 마치 미리 쓰여진 유서와 같이 축축하고 음울할 것이다. 이 흐느낌과도 같은 노래들은 모든 기억과 기록이 뒤섞여 새겨진 자신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필연적이었던 몸부림이다. 하지만 이것은 죽는 일과 사는 일 모두를 쉽사리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대신, 대체 이 모든 것이 어떤 아름다움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묻는 노래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듣는 이 나름의 비스듬한 모양으로 노래의 몸을 간직하기를, 그 모습은 파도에 닳은 돌맹이과 유리 조각과도 같이 오래 낡은 아름다움과 비슷한 것이기를 바라본다.
"내 손목에 바람이 불어 / 가만히 귀를 대고 들을 때 / 내 손목에 이 비가 그치게/ 당신은 입을 맞춰주네요
내 손목엔 꽃이 필거야 / 당신 숨결로 새로 피는 꽃"
-'나의 손목' 가사 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