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Virgins로 결성 이후, 정말 오랜 인고의 시간끝에 열린 열매다. 구로디지털 단지 외딴 술집에서 대낮에 첫 연주를 시작한 이래 10명의 드러머 교체와 2년간의 합동 군복무, 홍대씬에서의 암흑기를 거쳐 대학로, 건대 씬을 지나 물 건너 호주 멜버른까지 진출해 라이브 클럽을 떠돌며 쌓은 감정의 물꼬를 튿어 낸 싱글앨범 [1988 Nostalgia]를 내 놓았다. 총 3곡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은 밴드에서 리드기타와 보컬을 맡고있는 John의 자조섞인 메시지가 담긴 "Automatic" 으로 리스너에게 노크를 건넨다. 단 한 줄의 영어 가사뿐인 "Automatic" 은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단순한 가사와는 대조적으로 다채로운 곡의 구성과 변주, 리드미컬한 드럼과 이를 뒤따르는 베이스라인은 쉽사리 흘려 듣기 어렵다.
어느 정도 멜로디와 리듬에 귀가 충분히 적셔질 때쯤 경쾌한 비트로 시작하는 "Fear And Loathing In The Underground, 지하실의 혐오와 공포" 는 이들이 오랜 기간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지하실의 습기를 한껏 머금고 보컬과 코러스의 비명이 이어진다. 지하실 이라는 뜻과, 언더 뮤직씬을 중의적으로 일컫는 "Underground" 는 이들이 오랜 기간 머물렀던 홍대씬에서 느꼈던 주류음악의 답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직에 대한 푸념과 결국 그 속에서 함께 벗어날 길이 없었던 자신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분노를 러닝타임 내내 거침없이 내던져 버린다.
이쯤 되면 단순한 펑크록이라고 치부해 버릴지 모를 일이지만 낡은 전축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의 세번째 트랙 Fell, Fall, Foolish에 도입부를 듣고 나서야 이들이 내내 고민했던 것에 대해서 물음표를 떠오르게 된다. 깨달음에 대한 갈망을 원했던 1988년 풀숲이 흔들리는 들판의 어린 시절을 위한 소곡으로 그 시점에서부터 현재까지 늘 답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실패를 거듭할 수록 느껴지는 현재의 무기력함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보았을 법한 자기자신에 대한 변명과 푸념, 그리고 언제나 푸근하고 고민 없던 그 한때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때로는 애절하게, 그리고 뼈저리게 전한다.
앨범의 기획부터 녹음, 마스터링까지 모두 스스로의 손으로 해낸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차디찬 냉소와 결국은 그 세상의 일원일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웃음, 이를 느끼는 각자의 마음속 감정을 비관적으로 읊조리는 이가 되어 그 감정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