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니 아득하고
앞을 바라보니 어느덧 ······
실타래가 풀리듯 끝도 없이 풀리듯
한결같은 마음 순간순간 엮어서
이렇게도 좋아 할 수 있는가
정말, 이렇게도 좋아 할 수 있는 건가
평생 마음에 둔 이 가락 담아 놓은
이 한 장에
내 혼을 묻고 싶은 마음 일러라
아쟁이 박지용인가, 박지용이 아쟁인가
그녀의 자태 하나하나는 몽상으로 보인다.
한 줄, 또 한··· 줄 소리를 짓이겨 내는 활과 뻗어내는 몸의 기운은
느낄 수 없는 그리고 느낄 수 있는 공력과 정열이 어리어 있다.
그래서 더 더욱
나는 박지용 산조 연주에서 마력과 매력을 느끼게 된다.
연주는 꿈의 흔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그리워한다.
지난 겨울 추운 어느 날,
꿈의 흔적을 새기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리고 3월초 녹음을 마치고 난 후,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 얼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다.
박지용이
혼신으로 연주하는 그 몸짓은 소리와 함께 감명 그 자체이다.
이 한 장, 꿈의 흔적에 묻혀서 살아 갈 수 만 있다면········
우석대학교 국악과 교수 심 인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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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용 음반 출간을 축하하며'
기호지세(騎虎之勢)라 하였듯 . . .
하루에 천리(千里)를 달리는 호랑이를 탄 석인(昔人) 처럼 ,
언뜻 지나쳐 간 세월이 어언(於焉) 20여년 !!
전남 대학교 한국음악과에 출강하던 시절,
제자 박지용은 대학 새내기 신입생으로 젊음의 패기 보다는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한 새로움과 설레임에 수줍음 많은 앳된 소녀였다.
그러나, 남달리 음악에 대한 애착이 많았고, 열성 또한 대단하여
오늘의 아쟁 연주자 박지용의 음악 세계가 열린 것 같다.
그간의 길고 힘든 인고(忍苦)의 20여년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이제 불혹지년(不惑之年)에
비로소 농(濃)익은 첫 소리판(音盤) 출간(出刊) 소식 접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음악가로서 박지용은 천성이 샘물처럼 맑고 은은하며
소리에 태초(太初)의 빛을 간직할 수 있는
가락과 흥(興)을 지니고 있는 산조(散調) 연주자로 자리 매김 하였다.
낙이불류(樂而不流) 흥이 겨우나 지나치지 않으며,
애이불비(哀而不非) 슬픔 겨우나 흥으로 승화 할수 있는,
선경(仙境)에 다가서는 무음(舞音) 넘어선 무음(無音) 경지
오를 때 까지 일취월장(日就月將하길 바란다.
나의 아쟁 산조를 더욱더 확산 발전 시켜,
한국 넘어선 지구 끝 구석구석 까지 널리 전파 하여,
세계 곳곳 온 지구인 어깨춤에 흥겨운 덩실 춤사위 물결 가득하길
행복한 바램으로 빌어본다.
이 첫 음반이 청출어람(青出於藍)의 단초(端初) 되길 바란다 .
아쟁의 소리는 슬픔이 아니다
슬픔을 딛고선 신명이 넘친다
때로는 슬프나 마침내 흥겹고
흥겨움 넘어선 신명이 꽃핀다
2013년 5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보유자 박 종 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