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남자 고등학교의 관례상 앞으로 불려 나가 따귀를 맞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일찍 하지 않아 세 대나 더 맞았다. 참 미련했다.
분명한 잘못을 했음에도 그때는 왜 그랬는지,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불려가서도 끝내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전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체벌이 많았던 학교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잘됐다 싶기도 했다.
선생님께 완전히 찍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핑계도 덧붙였다.
엄마는 진심인지 몇 차례 물으며 방법을 찾아보자 하셨으나, 아빠는 나약한 소리라며 학교가 네 마음대로 정하는 곳이냐고 언성을 높이셨다.
철없던 나는 되레 큰소리를 쳤다.
“아빠는 내가 맞든 말든 상관도 없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웃음이 날 만큼 황당한 이 말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임마!”
라고 하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아마 내 기억 중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시간이 흘러 내 아이가 생겼다.
열 달을 손꼽아 기다려 감격적인 첫 상봉을 하고, 난생처음 기저귀를 갈아보고, 어정쩡한 자세로 분유를 먹였다.
첫 옹알이에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고 첫 뒤집기에 물개박수를 쳤다.
매일 밤 기도를 해주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재워보니, 그때 아빠의 말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아빠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제야 그 이야기를 아빠와 나누고 싶지만, 이미 곁에 계시지 않으니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다.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아빠가 늘 일하시던 자리에 가서 모든 자료를 정리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빠의 동창회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빠가 가장 최근에 쓰신 글 중에는 내 앨범 소개 글이 있었다.
늘 음악이 돈이 되냐며 지나가는 말로도 응원 한 번 안 해주시더니, 뒤에서는 본인 자식의 열심이 담긴 결과물이라며 여기저기 소개를 하셨던 모양이다.
아빠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아도 무조건적인 내 편.
나는 언제나 아빠의 자랑이었고 보물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내 자식을 낳아보니 아들은, 그리고 자식은 그냥 원래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그리고 늘 아빠가 그립다.
수많은 기억 속에서 나를 지지해주고 나의 방패가 되어주던 아빠.
그런 아빠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이 곡을 썼다.
우리 아빠를 상상하며, 이제는 아빠가 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곡을 채웠다.
'지금 하늘에 계신 아빠라면 나에게 어떤 편지를 써주실까', 그리고 '내가 하늘나라에 간다면 우리 아들에게 어떤 편지를 써주게 될까' 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곡을 세상에 내놓으며 아빠가 그리운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세상의 모든 아빠들에게 그 노고와 사랑을 알아주는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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