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 일환… 실험성과 몽환성의 극한값
- 원곡은 18분 38초 산울림 최장(最長)곡… 시공간 압축해 비튼 ‘까데호 블렌드’로
산울림의 음악은 불규칙 17면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너무도 다른 게 보인다. 예쁘다. 거칠다. 꿈결 같다. 매섭다. 다정하다. 매몰차다. 따뜻하다. 화 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긴 곡은 뭘까. 6분 5초의 러닝타임 가운데 무려 3분 28초를 전주에 내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간주만 2분 40초 넘게 이어지는 ‘청자 (아리랑)’? 아니다. 산울림 제3집의 B면 전체에 똬리를 틀고 늘어진 18분 38초짜리 대곡 ‘그대는 이미 나’가 단연선두에 있다.
러닝타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광기 어린 곡. 바짝 날이 선 기타의 커팅 주법과 질주하는 리듬은 거의 1990년대 그런지(grunge)를 연상시킨다. 후렴구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레’의 고집음(固執音)을 타고 고공비행하는 김창훈의 코러스…. 잔뜩 성난 김창완의 퍼즈 톤 기타, 출렁이는 김창훈의 베이스 루프, 부단히 난타하는 김창익의 입체적 드러밍이 쾌주를 이어가는 기나긴 간주부를 통과하면, 모그 신시사이저가 성겨진 공간을 성간 먼지처럼 부유하고, 문득 몽환적 발라드로까지 전개된다. 천변만화의 막간극들은 예의 맹렬한 후렴구가 채우면서 현실과 환상 사이를 멀티 접속, 멀티 교신 하는 것이 이 곡의 유별난 드라마다.
강렬한 잼 밴드의 전통부터 국악과의 신묘한 만남까지, 연주력과 공감 능력과 상상력을 무기로 한국 음악계를 종횡하는 밴드 까데호가 이번 중책을 맡았다. 일단 길이를 원곡의 3분의 1 이하로 확 줄였다. 5분 10초의 시간은 그러나 허투루 흩어지지 않는다. 넓게 펼쳐져 있던 과거의 꿈길 속 평원을 재건축 아파트의 전용면적 100㎡에 압축하고 비틀어 넣었다. 뭔가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슬로 템포로 나아가는 악곡의 흐름과 사운드에서는 베이퍼웨이브(vaporwave)와 아방팝(avant-pop)의 현대적 커튼마저 어른거린다.
그리하여 이제 산울림과 까데호의 ‘그대는 이미 나’는 마치 금강산 만물상(萬物相)과 소금강 화표주(華表柱)처럼 솟아 있다. 평평한 현실이 어딘지 답답하고 지척의 사랑은 멀게만 보일 때. 꿈의 세계로 가는 입장권을 사는 대신 재생 버튼을 누르면 구름에 뜬 기암괴석이 보일 것이다.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미 그대, 그대는 이미 나이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가 음악을 듣는 이유는 들리고 보이는 세상 너머를 보고 듣기 위함이 아닌가. 여기 전설 같은 산길 위에 기암괴석처럼 구불거리는 열쇠 몇 개 놓여 있다. 산울림과 그의 후배들이 있다.
(까데호의 ‘그대는 이미 나’ 리메이크는 산울림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성사됐다. 산울림은 역사적인 50주년을 맞는 2027년까지 밴드와 멤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50곡을 후배 뮤지션과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까데호의 ‘그대는 이미 나’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산울림의 대장정은 이어진다.)
임희윤 음악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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