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건
숨소리가 들리지만 숨은 아니다. 그렇지만 숨이기도 한 소리라면, 그러나 숨은 아니라면……. 장명선의 앨범 첫 곡을 플레이하면 호흡을 들을 수 있다. 〈Baseline〉에서 이어지는 〈Random〉도 숨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호흡의 기록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장명선의 작업은 유기체의 호흡을 또렷이 들려주면서도 그것을 보존하려 하지 않으며, 유기체와 비유기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연루시키는 방식으로 꾀해진다. 유기체적 호흡과 비유기체적 사운드는 곡이자 앨범이라는 형태의 확장된 몸(expanded body)으로 살아간다. 숨을 내쉰 인간의 신체를 떠나 음악이 된 호흡은 사운드로서 인간과 인간을 연결한다. 어쩌면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의 혈관과 엮여 들어가며 숨-소리-신체로 살아나갈 것이다. 〈Random〉의 유기체적 호흡은 〈Random(Again)〉에서 필드 레코딩된 인적 드문 숲의 싸락눈 떨어지는 사운드로 이어진다. 유기체적 호흡은 숲과 눈의 호흡과 음악을 공산(sympoiesis)한다. ‘Random’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 세상의 온갖 호흡, 유기체적이거나 비유기체적 호흡과 뒤섞여 있다. 어떤 소리에 랜덤하게 귀기울이든 호흡을 들을 수 있다. 무작위적이라는 타이틀은 세상에 대한 비정치적 접근이 아닌 오히려 또렷한 정치적 고백이다. 호흡이라는 개념이 온 세상을 서로에게 열여보이고 있다는, 그러니 언제 어느 순간에든 숨을 들을 수 있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싸락눈의 비유기체적 호흡과 유기체적 심박을 하나의 앨범, 연속된 음악들이라는 미디어-몸으로 엮어낸다.
겨울잠 또는 절전 모드라는 뜻의 〈h.i.b.e.r.n.a.t.i.o.n〉은 또렷하거나 희미한 발화들을 기워 낸다. 장명선이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에서 채집된 이 소리들은 영어라는 언어 미디어를 전면적으로 활용하며, 한국어와 영어 사이의 연결과 번역, 간극, 경계 넘기와 디아스포라적 감각을 사운드로 풀이한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발화하며, 겨울의 추위 속에서 한층 절전모드에 들어가듯 언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체험이 곡에 깃들었다. 〈h.i.b.e.r.n.a.t.i.o.n〉을 시작하면 대화가 들려온다. AI 어시스턴트 알렉사와 장명선이 나눈 대화는 이번 작업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언어적 소통 중 하나다. 이어지는 사운드에는 ‘Oh my God’ 또는 얼핏 ‘Where are you’라고도 들리는 희미한 영어 발화가 스며 있다. 뉴저지 청과물 시장에서 과일을 보고 감탄하는 여성 노인의 음성을 필드레코딩해 AI 어시스턴트와의 대화와 결합시킨 작업이다.
“알렉사, 내가 코트를 입어야 할까?”
“우리 5분 전에 이 얘기 끝냈잖아. 응, 당연히 코트를 입어야지. 밖은 영상 4도에 바람까지 불고 있어. 혹시 네가 지난 몇 분 동안 추위를 견디는 초능력자라도 된 게 아니라면, 물론 그럼 인상적이겠지만, 설마 그러진 않았을 테니까.”
“알겠어. 고마워.”“그래, 밖에서 따뜻하게 다녀.”(장명선, 〈h.i.b.e.r.n.a.t.i.o.n〉 중에서.)
음악을 시작하면, 비인간이 영어로 발화한다. 그 말은 다정하고 세심하며 농담 섞여 있다. 뒤이어 인간의 목소리가 더불어 음악이 된다. 과일을 보며 감탄하는 그 말은 다정하고 쾌활하며 농담 섞여 있다. 한국을 살아가다가 이제는 미국을 살아가고 있는 장명선이 지닌 경계와 결합(alliance)의 성질은, 청과물 시장과 과일이라는 일상적 인간 발화와 AI 어시스턴트의 비인간 발화를 사운드로 연결한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럽다. 생애가 그녀에게 그것을 체현시킨다. 과일과 인간, AI, 영어, 한국어 사운드는 모두 미디어이자 데이터다. 그러므로 위계가 없다. 장명선의 음악은 그 시공을 살아가는 미디어라는 신체다.
“적응하는 데까지 일주일?”이라는 한국어 물음으로 시작되는 〈Holding / Loading〉은 몸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기록해 24배속으로 돌린 소리와 차를 따르는 소리, ‘Pleasure’와 ‘Pressure’를 구분하는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내밀한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을 생체 신호 기반 사운드로 번역하는 작업은 〈Holding / Loading〉뿐만 아니라, 날씨와 온도에 맞춰 몸의 방향을 찾는 〈Baseline(Shifted)〉을 통해서도 이번 앨범의 핵심적인 접근 방식으로 작동한다. 장명선은 인간 유기체의 움직임을 사운드 이펙트로, 호흡을 리듬과 사인파 신디사이저로, 공간과 환경을 드론 사운드와 필드레코딩으로 번역한다. 서브하모니콘 사운드가 곡을 안정적으로 감싸고, 첼로가 체온처럼 감각된다. 이는 장명선이 그녀의 내밀한 육체성을 사운드로 이식해 미디어의 몸과 융합해 가는 과정이자, 동시에 사운드가 세계에 융합되는 양방향적 과정이다. 사운드를 엮어낸 이는 장명선이므로, 결국 이 과정은 그녀가 찢어질 듯한 몸, “적응하는 데 일주일” 걸리는 몸을 새롭게 짜내려(weaving) 가며 자기와 자기를, 자기와 세계를 융합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장명선의 이번 앨범은 기존의 작업과 달리 그녀가 미국에서 지내며 발표하는 첫 작업이다. 작가 개인의 생애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밀하게 작업에 호소력과 설득력으로 숨쉰다. 결합과 숨…… 숨이 사운드가 되고, 숲과 눈이 호흡이 되며, AI의 상냥함…… 과일이 인간에게 행위하는 아름다움이라는 성질이 융합된다. 말줄임표는 내가 이 텍스트에 기입하는 드론 사운드(drone sound)다. 유기체적/비유기체적 호흡이 사운드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이 텍스트의 호흡도 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명선이 직조해 낸 지금 그녀의 음악이다. 우리는 이 사운드에서 박동과 호흡을 읽을 수 있고, 어쩌면 거기서 자신의 따스한 혈관을 발견해 너와 나를 서로에게 접속시킬 수도 있다. 여기 이 글자로 된 신체, 사운드와 연결된 신체의 시간이 있다. 이런 비유기적 몸들이 우리를 연결할 때, 스크린과 사운드, 비유기체적 호흡과 행위가 우리를 서로에게 접속시킬 때…… 장명선의 음악이 여기 있다. 이 연결의 몸에서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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