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형태가 없는 음악을 문자로 형언해 보려 애쓰는 대신, 다섯 편의 긴 고백을 남겨두기로 합니다.
이 글은 괴물과 새와 나비로 이어지는 변모와 재탄생, 그리고 자기 이해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섯 편의 글은 각 장마다 개별로 읽어도 문제가 없고, 연결해서 읽을 때는 서사의 구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소개문은 노래를 듣기 전에 노래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통로 같은 역할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읽지 않으셔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좋은 예술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아래의 문장들은 곁들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 이야기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처연하지만 아름답고 온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한 이야기 말이다.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여 세상을 더 깊은 시선으로 꿰뚫어 보게 될 때, 부조리와 무의미에 대한 한 자락 의심도 지펴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허무와 맞서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 헤매며, 더 파편화된 이야기들을 무자비하게 쏟아붓는 것으로 개인의 적막을 메운다. 그리하여 결국 희망적 공상이 깃들 자리마저 사라진다. 우리는 이야기에 파묻혀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이야기라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당신이 노래를 통로 삼아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노래는 길이 보이지 않는 풍랑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방이 막힌 벽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당신이 노래라는 형식을 취한 이야기를 통해 당신 자신에게서 더 멀어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을 열고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직접 만지고 느끼고 헤아려 보길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는 계단이 되어줄 수도 있다. 우리 안의 여러 층위로 더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칸칸이 쌓아 올려져 있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저 깊은 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그런 계단처럼 말이다.
신화 속에서는 주인공이 심원한 곳에 있는 어두운 존재와 마주한 후에,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덤벼든 싸움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결말이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적확한 승리나 완전한 패배란 현실의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 개념과 같으므로,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환상을 기꺼워하고 그것에서 삶을 위안하며, 때로는 삶을 모방하기도 한다.
현대의 우리는 서로의 얼굴 속에서 매일 시지프(Sisyphus)를 본다.
우리는 이 격변하는 시대에 영원히 붙잡힌 채로 매분, 매초마다 생성되는 허무를 산꼭대기를 향해 밀어 올리고 있다.
[환상소곡집]은 내가 음악가로서 자립을 시도하며 태어난 앨범이다.
만약 이 앨범의 이야기들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면 연작으로 이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환상소곡집]부터 심규선은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서서히 견지하게 되었다.
누가 지금의 심규선을 만들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탓을 당신에게 돌리고 싶다.
심규선을 사랑해 준 당신이 바로 '심규선'이라는 뮤지션의 탄생과 성장에 가장 책임 있는 사람,
심규선의 모든 작품에 대한 공동 창조자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2. 괴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긍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매체를 통해 듣고 보아온 닳고 닳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를 '영웅'으로, 악마를 '괴물'로 바꿔 말하면 어떤 사람은 어색한 기분을, 또 어떤 이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괴물이라는 단어는 범죄자와 천재성을 지칭할 때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에서 모두 통용된다. 신기한 일이다. 괴물 같은 신인, 괴물 같은 재능, 괴물 같은 집중력, 괴물이 되어버린 누군가.
외면하고 싶을 만큼의 추악함과 찬란하게 빛나는 천재성을 수식하는 단어가 공통될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천재의 천부적인 재능이나 범죄자의 끝없는 악의 양쪽 모두가, 범인(凡人)인 우리들에게는 별반 다를 바 없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거나 거의 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괴물'이라는 말이 혐오가 아닌 찬사의 의미로 쓰일 때는 반드시 그 표현 안에 강력함과 탁월한 힘을 내재한다. 섬세함이나 선량함 같은 부드러운 힘이 아니라, 집요함이나 놀라움,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은 충격적인 어떤 힘을 포함하는 것이다. 마치 괴물 같은! 마치 괴물 같은!
내 생각에 우리 모두의 안에는 천사와 악마도 있지만, 더 극렬히 대치되는 형태인 영웅과 괴물도 존재하는 듯하다. 천사와 악마라는 표현은 너무 오랫동안 인간 내면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수면 위와 수면 아래처럼 모래 알갱이 하나만큼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서로 결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저히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세계. 성질과 층위는 다르나 이미 하나의 본체인 것.
그러나 내 느낌에 영웅과 괴물은 조금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이는 데 성공하거나, 적어도 죽이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의 존재 이유가 흐려져 보일 만큼 대치적인 관계에 놓여져 있다. 천사와 악마는 함께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영웅과 괴물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함께 존립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나는 내면의 광산을 파헤쳐 무언가 캐내 올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로잡은 이 이미지에 푹 빠진 채로 여러 계절 동안 '괴물'이라는 주제에 깊이 침잠하였다.
괴물은 누구인가? 내가 이 주제를 창작적 관점으로 데려오자마자, 즉시 신화 속의 영웅 대신 괴물에 더욱 강하게 매료되었다. 그러자 나의 관점 또한 숭배받아 마땅한 영웅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그 주변 배경까지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특히 인간성을 지닌 괴물들을 탐구하였다. 괴물은 신들과 반신반인인 영웅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지만 반드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괴물은 강제로 부여받은 지위를 벗어날 능력을 스스로 갖춘다. 괴물은 늘 불공정한 싸움을 하며 영웅처럼 부활하거나 절대자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신화적 괴물의 특성에서 영웅보다 더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신에게 선택받은 자가 아니므로, 살아남은—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일면 괴물의 면모가 있을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일생의 업적을 잘 포장해 영웅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데 성공한 괴물도 있고, 당대에는 괴물이나 그보다 더 부정한 존재로 인식되어 지독한 형벌을 피하지 못했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 영웅적인 인물로 재평가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물론 사람은 영웅도 괴물도 천사도 악마도 아니고, 만물의 영장도, 그렇다고 짐승도 아니며 더더구나 신도, 노예도 아닌 그저 하나의 종(種)일 뿐이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형용할 수 있는 한계선 안쪽에 놓인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어야만 한다. 인간의 생애는 장엄한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되기 위해 영웅심과 괴물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어느 시기 나는 내가 괴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 이미지는 너무 강렬해서 한동안 내 거울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싫어했고, 급기야는 내가 미움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목표한 바를 이루어내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살았다. 결과를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기본적인 생활이나 안위도 돌보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괴물처럼 무자비하고 잔인했으며, 냉정하고 엄혹한 판단 기준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수도 없이 생채기를 입혔다. 목표는 달성되었고 결과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자기혐오와 분노 또한 온 전신에 독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성취에 중독되었고 통제력을 잃었다. 많은 것을 얻은 대신 스스로를 일부 잃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나는 나의 괴물과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의 '괴물성'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법이나, 나를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영웅적 면모가 발휘되어 내면의 괴물을 한칼에 물리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을 자기 스스로 구원해야만 한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본다. 나는 괴물이라고 치부하며 '내가 생각하는 나'와 분리하려고 애쓰던 사나운 존재 역시 나의 일부이며, 그 역시 깊은 존중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면 내가 불행한 일에 넘어지고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을 때, 갖은 고비들과 낭떠러지에서 나를 지켜준 최후의 힘은 바로 그 괴물에게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나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일을 결국 해내게 하고, 아름다움과 진실성 같은 가치들에 더욱 깊이 탐닉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 괴물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단 한 순간도 내가 되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괴물이 있다. 그 괴물의 이름은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으며, 혈육이나 친구나 심지어 배우자조차 알지 못한다. 당신이 자신의 괴물과 대면하는 일에 성공한다면, 그 괴물은 상상처럼 추하거나 혐오스럽거나 그렇게 사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을 꼭 닮은 당신의 다른 존재, 모든 외부의 고통으로부터 핵심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보호자, 그림자와 페르소나, 우리 얼굴의 또 다른 반대쪽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을 어쩌면 기꺼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격변하는 시대에서, 생존자로서의 현대인이 요구받는 영웅심이다.
괴물은 착하고 순종적이지 않아도 된다. 괴물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설정하며, 누군가의 위력이나 기대에 맞추어 삶의 방향을 재고하지 않는다. 누구도 괴물에게 규칙을 강요할 수 없다. 괴물은 자신의 자아를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괴물은 죽음조차 겁내지 않는다. 괴물은 보물이나 명예를 노린 약탈자들이 걸어오는 싸움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괴물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운다. 나는 때때로 영웅처럼 생각하고 괴물처럼 행동한다. 혹은 그 반대일 때도 있으며, 둘은 겨루기를 하듯 언제나 내 안에서 엎치락뒤치락을 한다. 기쁜 마음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사실 이러한 길고 지루한 부연 설명들이 아무런 쓸모나 소용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궤변조차 소중히 여기며 관심을 갖는 누군가가 거기 있음을 알기에 그를 위해 쓴다. 그저 당신이 당신 안에 있는, 당신보다 훨씬 강력하고 거대한 존재와 대화하는 일에 이 음악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3. 새
저는 자주 알을 깨고 나오는 새를 상상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상상이 잘 통할 때가 많았지요. 그런데 이제 마흔을 앞둔 나이에 이르게 되니,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미지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꼭 맞아떨어지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여전히 태어나려는 충동은 남아 있는데, 삶을 겪으며 체감한 성장의 고통이나 그 실감이 어린 날의 환상에 찬물을 퍼붓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갓 태어나는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상상에 이미 낡고 지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대부터 20대 언저리까지는 알을 깨고 태어나는 작은 새를 자신의 모습에 빗대어 생각하기가 쉬웠습니다. 대학생이 되는 것, 성인이 되는 것, 사회에 첫발을 내미는 것, 고향을 떠나 상경하는 것, 자취를 시작하는 것, 해외나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처음이라는 단어와 결부되는 모든 경험들을 맞이하는 것. 그런 일들과 사건들이 계속해서 쉼 없이 이어지는 시기였으니까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모든 것들이 태어나 처음 보는 세상,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겪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정말로 알을 깨고 나오려 애쓰는 작은 새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알을 다 깨지 못했고 날개도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요. 하지만 실제로 알을 깨고 나온 직후에 곧바로 날아가는 새는 없지요. 그런 상상은 그저 동화 같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피나는 노력으로 온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알껍질을 다 떼어내는 일에 겨우 성공해도,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법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확실히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을 깨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즉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10대나 20대의 시간들을 보내왔지요. 성인으로서의 삶에 내던져지고 나면, 현실과 상상 사이의 괴리, 그 둘 사이에 극심한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분들께서도 이 혼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은 태어나는 새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새의 창조자에 의해 선택권 없이 강제로 주어진 환경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 알 속에서 양육되고 보호받지만, 우리가 드디어 충분히 자라 세상에 막 던져졌을 때는 보호막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태동기 동안 나와 내 알껍질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얼룩덜룩한 무늬의 껍질을 원하지 않았다거나, 너무 차가운 둥지, 너무 좁은 알 속에서 오래 고통받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욱신거리는 통증이나 발작성 불안을 안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의 어느 날 나 자신을 돌아보다가, 제가 심각한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도 칼같이 거절했고, 늘 진지하게 고민한 결론인 체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도망치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처음 세상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저도 다른 많은 도전하는 사람들처럼 트라우마와 쇼크를 얻고 상처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용기를 내 연거푸 다시 도전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요. 그래서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도 결국에는 똑같은 상처를 한 번 더 입는 일에 그치고 말 거라는 확신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그 도전이 아니라도 저한테는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일들이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핑계를 합리화하며 이리저리로 피해 다니기가 더 쉬웠지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저는 무겁고 깊어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가볍고 넓게 펼쳐지지는 못했습니다. 불안을 느낄수록 더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급기야는 아무도 없는 곳까지 파 내려가고 말았어요.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제가 서 있는 곳은 사방이 어둠에 둘러싸인 갱도 같았습니다. 소리쳐서 동료를 불러봐도 내 목소리의 메아리만 돌아올 뿐,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완전한 고립감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계속 파 내려갈 수도 없고, 너무 지쳐서 다시 기어올라갈 수도 없는.
저는 그렇게 고립감과 두려움에 압도될 때마다 스스로 날개가 있는 무엇이 되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이 고립은 주변의 환경이 나에게 억지로 또는 강제로 떠넘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알껍질을 어떻게 깨야 하지?’라는 고민에 아무리 부딪혀 보아도, 나의 작은 손으로는 이렇게 두꺼운 벽을 깰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믿는 것만 진정으로 믿을 수 있지요. 아무리 입에 발린 멋진 말들로 끊임없이 자신을 긍정해도, 현실이 괴롭다면 결국 자기부정의 감옥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돌이켜보니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실 이미 알껍질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내게 강제로 부여하거나 우연히 얻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초한 고립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집도 대단한 저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원석을 캐냈고, 심지어 그걸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으니까요. 저의 음악 역시도 아직 반짝이는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빛이 바래지는 순간 제가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저는 지독한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인내하고 버티는 쪽을 선택하여서, 여전히 바깥세계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고 외부에서 온갖 좋고 나쁜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거나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건넬 수도 있었지요. 그때 갇힌 알껍질과 암흑 같은 갱도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새로운 관점의 자기 이해가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것, 스스로 택한 고립, 스스로 정한 방식이기 때문에 마치 애벌레들이 스스로를 고치로 감싸는 것과 같다는 상상이 제 안에서 형태를 그리며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또 다른 존재로의 변모를 겪고 있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요.
4. 나비
셀 수 없이 무한한 잎사귀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두 맛보고 먹어치우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할 방법을 찾아냅시다.
입에 쓸까 봐, 독이 있을까 봐 맛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을 끌어내리는 것 대신,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받아들이세요.
그러다 보면 더 이상 똑같은 잎사귀를 갉아먹는 일이 재미없거나, 이제 충분해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스스로 고치를 만드세요.
제가 언제나 말하듯, '그래도 됩니다.'
고립감에 휩싸이고 완전히 혼자가 되어 스스로를 가두는 시간을 충분히, 그리고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가져도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할 때에 다다른 것일지 몰라요.
여기까지 애쓰며 견뎌온 당신이 이제 정말로, 거의 다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치 속에 자신을 완전히 가두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었던 나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봅시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나의 심연이 알아챌 때까지.
나의 심연 속에 있는 진정한 무언가가 드디어 나와 눈을 맞추고 내게 화답할 때까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내 안에 있는 괴물을 받아들입시다.
나의 놀라운 ‘괴물성’을 해방합시다.
대단히 강인하고 초월적이며 내가 되어야만 하는 나를 드디어 발견합시다.
나의 커져버린 존재를 감당하지 못한 좁은 고치가 찢어져버린 후에도, 얼마쯤 더 고요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줍시다.
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나비는 날개가 펼쳐지는 즉시 날아갑니다.
누가 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이에요.
아직 고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의 심연에 침잠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애벌레들은, 날아가는 나비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이종(異種), 처음 보는 신기한 존재, 하지만 아름다운 ‘괴물’이라고요.
어린 애벌레들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자신도 곧 나비가 되어, 태어난 나무라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 수천수만 송이의 꽃 군락이 펼쳐진 너른 들판을 날며 놀라운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러한 서사와 이미지에 착안하여, 환상소곡집 op.3의 제목을 〈Monster〉라 명명했습니다.
모든 곡에 괴물에 대한 상징과 암시를 배치해두었고, 듣는 이께서 보물찾기를 하듯 그 의미들을 찾아내고 맛보아 주시기를 희망하며 뜨겁게 쓰고, 전심으로 불렀습니다.
변모,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의 재탄생.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나비로 두 번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어떤 나비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비일 수 없고, 자신을 고치에 가두는 시간 없이는 절대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선택한 고난을 통해 진정한 완결적 존재를 스스로 완성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모두 일생 동안 두 번 태어납니다.
한 번은 타인에 의해, 한 번은 자기 자신에 의해.
5. 감사의 말
[환상소곡집]이라는 세계관을 3부작의 형태로 완결합니다.
이 세계 속에서 당신과 함께 모험하고 춤추고, 눈물 흘릴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제가 또 다른 모험을 시작하더라도, 우리 여정의 놀라운 기록은 언제나 이 앨범들 속에 영원히 새겨진 채 반짝일 것입니다.
[환상소곡집]은 단지 음악과 가삿말의 모음이 아니라, 당신에게 헌정된 ‘한 인간의 삶’입니다.
아낌없이 누려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것으로 이미 저에게 충분합니다.
이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면이 부족해 크레딧으로만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고 송구합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세 존재의 각별한 헌신이 있어, 열두 곡의 나비들이 고치를 찢고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음악에서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박현중님께,
놀라운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도전도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약한 글로나마 공언해드립니다.
삶에서는 이승남님께,
사랑하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삶도 음악도 여기까지 이어올 수 없었을 것임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께,
당신이 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의 존재가 당신으로 하여금 두 번 태어남을 경험했듯이,
나의 남은 삶 또한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25. 11. 11
당신의,
심규선
『환상소곡집 op.3 <Monster>』
All songs written and performed by 심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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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은 마녀에게 바치는 시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김유성, 박현중
Vocal 심규선
Double Bass 김유성
Piano 조영훈
Bandoneon 고상지
Percussion 정솔
Violin (efectos de Tango) 윤종수
Strings Arranged & Conducted by 박현중, 김유성
Strings 필스트링
Digital Editing by SAMIN
필스트링 (Concertmaster: 윤종수)
Violin I: 윤종수, 박영주, 민차미, 남민지, 우희원
Violin II: 박용은, 안채영, 임채연, 박동석
Viola: 변정인, 최창원, 정경빈
V.Cello: 노선정, 안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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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열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Rafael Barata
Bass 박현중
Piano 박현중
Background Vocals 유지현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홍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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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야의 아이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김은석
Bass 김유성
Piano 박현중
Nylon Guitar 조창현
Electric Guitar 조창현
Tin Whistle 권병호
Accordion 권병호
Bagpipes 권병호
Strings Arranged by 박현중
Strings Programming by 박현중
Violins I & II: 여소흔
Background Vocals 오미비, 유지현,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홍성준
Choir:
조창현, 임혜원, 송혁규, 문희원, 이하림, 박찬, 박기훈, 안은비, 최주훈, 이서희, 윤찬혁, 박이섭, 김수언, 박유림, 이은영, 유용재, 안재필, 이정연, 김예원, 김성균, 오슬기, 김기백, 황승민, 조영진, 김지구, 유영웅, 김규현, 김혜수, 임수혁, 정기윤, 윤지혜, 박라린, 김동영, 박종서, 박채은, 김준호, 정가미, 최영훈, 여소흔, 변미솔, 정솔, 이기혁, 조우재, 김형표, 이경민, 이성훈, 오주환, 이교한, 이진호, 류하은, 박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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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Legend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김은석
Bass 정가미
Piano 박현중
Steel Guitar 조창현
Electric Guitar 조창현
Background Vocals 오미비, 박현중, Nagorn Promma
Strings Arranged by 박현중
Strings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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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뱃사람의 노래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박현중
Bass 박현중
Piano 박현중
Steel Guitar 최영훈
Percussion 정솔
Background Vocals 유지현
Strings Arranged & Conducted by 박현중
Strings 융스트링
Melodica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SAMIN
융스트링 (Concertmaster: 김미정)
Violin I: 심상원, 김미정, 정현주, 이승진, 서영완
Violin II: 김재현, 정재윤, 서지숙, 장지혜
Viola: 김미령, 강현웅, 임진아
V.Cello: 박보경, 장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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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키르케 Kirké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김은석
Bass 정가미
Piano 박현중
Steel Guitar 최영훈
Electric Guitar 최영훈
Percussion 정솔
Background Vocals 오미비, 박현중
Strings Arranged by 박현중
Strings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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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요란 搖亂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김준호
Bass 정가미
Piano 박현중
Steel Guitar 최영훈
Electric Guitar 최영훈
Strings Arranged by 박현중
Strings Programming by 박현중
Violins I & II: 여소흔
Background Vocals 오미비, 박라린,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허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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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늑대향연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김은석
Bass 박제신
Piano 박현중
Electric Guitar 조창현
Percussion 정솔
Brass Arranged & Conducted by 박기훈
Flutes 1–3: 박기훈
Flugelhorn, Trumpet: 박준규
Tenor Saxophone: 박기훈
Trombone, Bass Trombone: 김민수
Background Vocals 오미비,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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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것은 아마 마지막 꽃잎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Piano 박현중
Nylon Guitar 조창현
Background Vocals 오미비
Digital Editing by 허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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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난설헌 蘭雪軒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Piano 박현중
Nylon Guitar 최영훈
Electric Guitar 최영훈
Bass 박현중
Background Vocals 오미비, 박현중
Orchestra Arranged & Conducted by 박현중
Strings 필스트링
Woodwinds 박현중
Brass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허은숙
필스트링 (Concertmaster: 윤종수)
Violin I: 윤종수, 우희원, 박영주, 왕아름, 남민지
Violin II: 최종완, 김이레, 임채연, 김효진
Viola: 변정인, 최창원, 김나영
V.Cello: 안지은, 이지은
Double Bass: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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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Fortune Teller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이서희
Vocal 심규선
Drums 이서희
Bass 이서희
Piano 이서희
Guitars 최영훈
Background Vocals 유지현, 윤지혜, 박현중
Orchestra Arranged by 박현중
Strings 박현중
Woodwinds 박현중
Brass 박현중
MIDI Programming by 이서희,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홍성준,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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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치 불처럼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은주현
Bass 이수형
Piano 박현중
Steel Guitar 조창현
Electric Guitar 조창현
Background Vocals 강버터
MIDI Programming by 박현중
Digital Editing by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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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Staff
All Songs Written & Lyrics by 심규선
All Songs Arranged by 박현중
Additional Arrangement by 김유성 (Track 01), 이서희 (Track 11)
All Demos Recorded by 박현중, 이승남
Vocal Editing by SAMIN, 허은숙, 홍성준
Session Coordination by 이승남, 박현중
All Instruments Edited by 박현중
Music Preparation by 박현중
Copyists: 박현중, 이광일
Score Proofread by 김지구, 심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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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 Studios & Engineers
All Vocals Recorded by
최우재, 김태용 @ Studio AMPIA
All Instruments Recorded by
1. 김은석 @ Silverstone Studio (Track 03, 04, 06, 08 Drums)
2. 김유성 @ Meateor Music (Track 01, 03 Bass)
3. 신대섭 @ Yireh Studio (Track 01 Piano, Bandoneon)
Piano Tuning by 윤기복
4. 정솔 @ SOL Music Studio (Track 01, 05, 06, 08 Percussion)
5. 윤종수 @ Phil Studio (Track 01 Violin — efectos de tango)
6. 신대용 @ Infinity Studio (Track 01, 10 Strings)
7. Rafael Barata @ RB Studio, Boston, Massachusetts (Track 02)
8. 조창현 @ JC Studio (Track 03, 04, 08, 09, 12 Guitars)
9. 권병호 @ Multipiti Studio (Track 03 Tin Whistle, Accordion, Bagpipes)
10. 조우재 @ Studio Kwan (Track 03 Violin)
11. 정가미 @ Gami1111 Studio (Track 04, 06, 07 Bass)
12. 최영훈 @ Kums Studio (Track 05, 06, 07, 10, 11 Guitars)
13. 정기홍 (Assisted by 이찬미, 주예찬) @ Seoul Studio (Track 05 Strings)
14. 김준호 @ JUNO Studio (Track 07 Drums)
15. 여소흔 @ Heun Studio (Track 07 Violin)
16. 박제신 @ Jaeshinmusic Studio (Track 08 Bass)
17. 박기훈 @ 망포갈 Studio (Track 08 Brass)
18. 은주현 @ Musitive Studio (Track 12 Drums)
19. 이수형 @ Soobro Studio (Track 12 Bass)
Backing Vocals Recorded by
1. 박현중 @ ding Studio (Track 03, 04, 06, 07, 08, 09, 10, 11)
2. 유지현 @ Spring Room Studio (Track 02, 05)
3. 강버터 @ Studio Button (Track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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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ing & Mastering
Mixed by
홍성준 @ 개나리싸운드 (Track 01, 02, 03, 04, 05, 06, 08, 11, 12)
조준성 @ W Sound (Track 07, 09, 10)
Mastered by 권남우 @ 821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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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ion
Executive Producer 심규선
Music Producer 박현중
Management / A&R 이승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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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Artwork by 옥기헌 @okkiinsta
Photograph by 10bit
Design by 김지혜 @wisdomad, 이승남
Hair by 지승현 (@theo_hair_x) Team BOLT
Make-up by 신누리 (@nuniddi) Team B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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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Music Video Directed by 10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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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Lyrics Translation 월드번역, Donna Park, FUNATO Teruhisa (船戶輝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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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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