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 수 없는 기억들을 붙잡으려 애쓸 때,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기억을 조각내어 어두운 길 위에 던져놓았다.
그 조각들이 발자국을 대신해서 돌아갈 길을 만들어주길 바랐고,
그 길을 따라 당신이 나를 찾아오길 내심 기다렸다.
당신은 오지 않았다.
체념한 채,
던져놓은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가며 먼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로 흩뿌렸던 마지막 조각이 놓인 자리에 이르렀다.
당신은 그곳에 있었다.
조각들을 눈물로 적셔내며,
조심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비로소 알았다.
당신 또한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조각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음을.
날이 선 조각들을 뭉툭하게 만들어주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음을.
고맙다.
기약 없던 미완성의 여정에 끝까지 남아있어 줘서.
1. 미아
엄마 품에 안기려고 우는 척했던 떼쟁이
아빠 등에 업히려고 아픈 척했던 뻥쟁이
2. 의식불명
한 번도 소리를 질러본 적 없던 사람처럼 먹먹했던 외침
수백 번 죽고 싶었지만 수천 번 더 살고 싶었던 가냘픈 마음
3. 하늘나라
대화의 꽃이 오갈 데가 없어서 쓸쓸히 시들어갈 때
슬픈 눈에 진 노을을 달여 그대의 피가 되어주리
그대의 피부 검게 메말라 가 세상과 멀리 시들어갈 때
그대란 빛에 그을린 살을 덜어 그대의 길을 밝혀주리
4. 타임캡슐
가슴 한구석 묻어뒀던 기억을 그리움이라는 삽으로 퍼낼 때
하나둘씩 보이는 사랑의 증표
5. HBD
빌어먹을 치매에게 지지 마세요
당신이 내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 한, 우린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
6. 천국에서 온 메시지
조각이 맞지 않아 생긴 빈틈 사이로 들어오는 시린 바람 속에서도 넌 아프지 마
7. 아네모네
애써 외면했던 발자국 뒤에는 반쯤 뒤틀린 자국 하나 정도는 남아있을 거라고
8. 정동진
꺼트려 놓았던 불씨를 되살릴 수 없기에
꺼내놓았던 마음을 다 태울 수밖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