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몸도 마음도 빈곤하여 크게 자랑할 것이 없는 시기라,
나는 A에게 종종 내 산발처럼 긴 머리를 자랑하곤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넓은 바지를 입거나, 머리가 긴 남자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A는 희고 작았다. 이름도 특이해 누군가가 들으면 쉽게 잊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나는 A를 좋아하는 마음에, 종종 A와 함께한 순간들을 자랑거리로 삼곤 했다.
좀처럼 고향 집에 내려가는 일이 없었지만, 고향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께 가장 먼저 A를 자랑했다.
A가 있는 곳이라면, 일산이든 강릉이든 어쩌면 지옥이든 가곤 했다.
A를 좋아하는 마음이 집착 따위의 것들로 변질될 즈음,
나는 더 이상 A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겨내지 못해 A에게 모진 말을 뱉었다.
2020년 여름 원흥역에서, A가 빌려준 심보선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초'를 돌려주는 순간이었다.
A를 원흥역에 두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이스턴 사이드 킥의 '다소 낮음'을 내리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 나의 문을 여는 생각만 하면서, 누구의 마음도 먼저 두드린 적이 없다.
그저 효율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 혈안이 되어, 나의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후 5년간 나는 어떤 삶을 살았더라?
누구와도 대화를 나눠본 적은 있던가?
대화란 무엇인가?
언어를 통해 서로에게 접속하여, 언어 이면에 있는 감정의 통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0년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내 입은 하나고, 내 귀는 두 개다.
두 개의 귀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좀처럼 누군가에게 접속하여 말할 일은 없었다.
지금은 A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A의 특이한 이름도, A의 이상한 행동들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오로지 나 혼자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탄식 속에 살고,
거리마다 뚫려 있는 A를 피해 가기 바쁘다.
그렇지만 A를 알지 못했던 날은
지금만큼 아름답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간 A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A에게 A를 잊었다고 자랑해야지.
그만큼 치열하게 세상을 사랑했다고 말해줘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