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 일환… 쓸쓸한 도시의 모던 록으로 재해석
- ‘좋다’의 이원석이 건네는 애이불비, ‘쓸쓸하다’의 울림
산울림의 ‘회상’은 걷는 노래다. 그 걸음은 천천하다. 그래서 되레 처절하다. 울음 없는 눈물이다. 안 울지만 넘쳐나는 조용한 눈물이다. 노래 속 주인공은 찬 바람 맞으며 걷는다. 홀로 하염없이 걷는다. 그러다 놀랍게도 그이를 마주친다. 얼어붙는다. 말 한마디 못 건넨다. 달빛처럼 얼어붙어, 이별의 이유조차 묻지 못한다. 그리고 자책한다. 악기들 역시 딱 그 속도로, 그 온도로, 그 데시벨로 노래에 조응한다. 분당 69 정도 되는 느린 박자에 미니멀한 편성과 음계만 가지고 수수한 손수건을 만들어서 청자의 손에 쥐어준다.
데이브레이크가 재해석한 ‘회상’은 그 속도, 그 온도, 그 데시벨을 이어받되 전혀 다른 질감으로 만들어낸 스웨터다. 이번 쓸쓸함은 마치 떠들썩한 일과시간이 끝난 뒤 텅 빈 도심 빌딩 숲을 주유하는 유령의 것과 같다. 역시나 악곡이 먼저 그러하다. 김창완의 음성이 마중하듯 먼저 나와 ‘길을 걸었’의 못갖춘마디로 곡을 여는 원곡과 달리, 데이브레이크의 버전은 담백한 비트와 건반 연주가 헤어진 융단을 먼저 깐다. 원곡과 같은 라장조. 이번엔 장2도에 해당하는 ‘미’가 긴장음 역할을 하고 이어서 나오는 베이스기타는 ‘파#-솔’을 편집증적으로 오간다.
원곡 역시 묘한 긴장감을 품은 곡이었다. 마냥 편안한 발라드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작곡자인 김창훈의 베이스기타는 단7도 음(도)이나 단 3도 음(파) 등 장조 아닌 단조에서 쓰는 블루노트(blue notes)를 장식음 안에 태연자약으로 묵묵히 섞어냈다. 보컬 멜로디가 ‘레-미-파#-라-시’의 장조의 펜타토닉으로 포크송의 고즈넉함을 피력하는 동안, 베이스기타는 ‘레-미-파-라-도’의 단조 펜타토닉의 대구법으로 오묘한 장력을 가미한 것이다.
곡 중반부의 기타 솔로는 단순하지만 산울림 역사에 남을 명연이었다. 라장조를 잠시 동안 완연한 라단조로 과감히 이행시킨다. 반음계 진행까지 더한 김창완의 전기기타 솔로. 이것은 곡 전반을 관통하는 저음 선율을 통해 조용히 홀로 외치던 김창훈의 슬픔(베이스)에 마침내 적극적으로 조응한다. 덤덤함을 가장한 노래의 기저에 저류로 흐르는 쓸쓸함과 서글픔의 파고를 이렇듯 적극적으로 표출시키는 명장면인 것이다.
데이브레이크는 이렇듯 의뭉스러운 원곡의 뉘앙스를 정확히 캐치했다. 그런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틀어서 표현했다. 마치 통나무라도 패듯, 또는 밤거리를 터벅터벅 걷듯, 투박하게 고막을 때리는 무뚝뚝한 4박자의 비트. 공간계 이펙터가 적당히 걸린 기타 사운드. 기타 솔로는 원곡의 선율에 충실하게 시작하지만 이내 도시적 사운드와 멜로디로 변주를 준다.
이원석의 보컬은 여기서 ‘좋다’ ‘들었다 놨다’의 흥분된 음성이 결코 아니다. 성대에서 힘을 쭉 뺀 저 음색은 그렇다고 해서 요즘 식의 ‘공기 반 소리 반’과도 결이 다르다. 후렴구의 처음. ‘후~’ 하고 내뱉는 첫 음은 거의 한숨 같다. 건반만 남고 결국엔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의 보컬 또는 고백만 남는 피날레. 쓸쓸함은 마지막 커튼까지 허망하게 닫는다. 끝내 장조인지 단조인지, 기쁨인지 슬픔인지, 원망인지 자책인지를 감춘 악곡은 뿌연 안개 속을 마냥 산책만 하다 사라져간다.
1982년 산울림 8집에 실렸던 ‘회상’은 한국 가요사의 한편을 수놓은 발라드 명곡이다. 그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다. 1987년 ‘사랑의 썰물’로 이름난 임지훈이 절절한 포크송으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1999년 델리스파이스는 원곡 선율을 ‘뽕기’ 넘치는 단조로 바꾼 인트로, 퍼즈 톤이 돋보이는 얼터너티브 록에 후반부 랩까지 얹은 파격적인 버전으로 선보였다. 2001년 박진영은 6집 ‘GAME’에서 방시혁의 편곡을 덧대 R&B 팝으로 틀었다. 장범준은 드라마 ‘시그널’ OST를 통해 미묘한 코드 변화와 현악을 가미해 팝 발라드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이제 데이브레이크가 있다. 이들은 원곡은 물론이고 그동안 재해석된 그 어떤 버전과도 다른 독창적인 분위기로 ‘회상 유니버스’를 확장했다.
우리는 저마다 많은 노래를, 수많은 기억을 가졌다. 머릿속에 저녁별처럼 명멸하는 그때 그 골목길의 잔상과 같이 ‘회상’의 세계는 그렇게, 이렇게 끝없이 계속된다.
(데이브레이크 ‘회상’ 리메이크는 산울림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성사됐다. 산울림은 역사적인 50주년을 맞는 2027년까지 밴드와 멤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50곡을 후배 뮤지션과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데이브레이크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산울림의 대장정은 이어진다.)
임희윤 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