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산조의 거장 신쾌동은 1910년 전라북도 익산 삼기면 오룡리에서 태어났다. 소리를 잘하고 풍류를 즐기던 아버지 신선조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 재동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거문고산조의 창시자 백낙준을 찾아가 아들에게 거문고산조를 가르쳐 주도록 간청한다. 신쾌동은 이때부터 백낙준에게 4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문고산조를 배운다. 그리고 거문고산조를 배우고 난 직후부터는 신쾌동에게 거문고 가락을 배우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그는 작고하기 한 해 전인 1976년에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보존 연수회'를 만들고, 이 연수회 직인을 자신의 임종을 지킨 수제자 김영재에게 넘겨주는 등 신쾌동류 거문고산조의 보존 및 계승을 위한 노력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스승의 산조를 더욱 개발하여 엇모리와 휘모리를 새로 짓고 중중모리를 확대시키는 등의 손질을 하여 자신의 거문고산조의 틀을 잡았다. 신쾌동은 거문고의 거장이라고 불릴 만큼이나 거문고와 그를 분리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는 거문고만 있으면 3, 4일 뒤의 날씨까지 점을 칠 수 있었다고 하니 그와 거문고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신쾌동류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백낙준(白樂俊)이 남도(南道)의 무악(巫樂)인 시나위 가락을 근본으로 지었으며, 조성의 구분이 명확하고 가락의 느낌이 호쾌하고 굳건하다.
가야금산조가 화사하고 섬세한 음악이라면, 거문고 산조는 수수하면서도 웅장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지만 이번 나선진의 신쾌동류 산조 앨범에서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짧은 산조로 구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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