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金東鎭 1937-1989)의 본명은 김동식(金東植)이며, 호는 취송(吹松)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 55번지에서 아버지 김봉태와 어머니 주남옥 사이의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김동진은 14세 때 당시 남원에 기거하던 강백천으로부터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16세 때에는 정읍에서 신달용에게 대금 줄풍류를 배웠으며, 20세쯤부터 강백천에게서 대금산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한주환에게도 잠깐 대금산조를 학습하였다. 그 후, 김동진은 강백천류 대금산조와 한주환류 대금산조 가락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가락을 더하여 그것을 자신의 산조인 김동진류 대금산조라 했다고 한다.
김동진 대금산조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흔히 김동진을 시나위더늠인 강백천류 대금산조의 일인자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그는 강백천의 대금가락을 바탕에 두고 편재준과 한주환 등의 가락을 덧붙여서 강백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새로운 바디를 형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음반에 수록된 김동진의 음악을 들어보면, 김동진 대금산조의 가락은 소리더늠의 한주환류 대금산조의 가락 짜임새와 같으며, 조를 사용하는 방법도 거의 흡사하다.
또 그는 성장과정에서 명고로 이름을 날렸던 큰 형 김동준의 영향을 크게 받아 소리꾼들과 어울리며 성장했고 80년대 종로에서 종로패를 결성해 함께 활동했던, 김일구, 강정숙, 서용석, 김청만, 박종선 등 당대의 명인들과 음악적 교류를 통해 시나위더늠의 강백천 대금산조와는 다른 자신만의 가락을 완성해 나갔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대금산조에서 중요시되는 성음면에서는 짙은 계면성이 주를 이루는 강백천의 대금산조와 같은 줄기를 가졌다. 이것이 김동진 산조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동진은 강백천류 대금산조의 일인자로 평가받았음에도 당시 중요무형문화재였던 강백천류대금산조의 이수자나 문화재로서 지정받지 못했는데, 그 표면적 원인에 대해서는 왼손 대금을 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위의 과정들을 통해 그 음악적 외연이 확장되어 강백천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듯 다방면에 뛰어나 여러 음악적 활동을 하며 풍성해진 그의 대금산조가락은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1989년 작고 이후 그의 가락은 중앙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오롯이 계승하는 이는 그가 한국민속촌에서 민속공연단 대금연주자로 재직하던 시절 만난 문동옥이 유일하다.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다 경주에 터를 잡고 김동진의 가락을 전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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