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로 비치는 빛과 그 아래에 잠긴 비명
한여름의 끝, 가을 사이
차마 앞발을 내디딜 용기 따위는 없어,
여름의 끝물이 담긴 길을 몇번이고 되돌던 밤
그 밤 우리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탓일까
슬픔과 고통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다만,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을 뿐
커피를 몇 번이고 내리며 홀짝이기를 반복하며
창문 틈 사이로 달안개가 스며들어올 때까지
물결처럼 일렁이는 책장을 넘기며 숨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일렁이는 네 머리칼
젖은 발목 위로 젖혀지는 고개
말하지 않아도 돼
그저 고개만 끄덕여줘
끝이 닮은 것들끼리 꼬리를 엮어 날려보내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