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인드코어의 작법에 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개똥철학중 하나가 있다. 기본적으로 그라인드코어 곡은 수축과 이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라인드코어의 핵심이 되는 블라스트비트만으로 곡의 전체를 커버해버리면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줄여서 말하는 소리이다. (물론 어둠의 그라인드코어는 이 모든것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 안듣는 자식도 내 자식인 것이다.) 그라인드코어는 언제나 그 양면성이 핵심이었고,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하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 둘은 결코 서로 배척해야할 관계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을 가지고 있듯이 그라인드코어 역시 인간적이고 양면적인 음악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 수준낮은 개똥철학에 불과하지만 비유로서는 적절하다.) 요컨대, 나후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태어난 빛의 그라인드코어이며, 세테 스타 셉트는 헨타이의 나라에서 태어난 어둠의 그라인드코어이다.
이 둘이 만난 것은 2011년 홍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의 철거투쟁을 지원할 목적으로 개최된 공연 “51+”에서였다. 자립음악생산조합과 밤섬해적단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세테 스타 셉트와 나후는 두리반 2층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호걸은 호걸을 알아보는 법, 그 둘은 첫 눈에 서로를 간파하여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피끓는 스플릿 앨범의 맹약을 맺었다. 빛과 어둠의 만남, 토르와 로키, 물과 불, 물질과 반물질, 흰구름과 먹구름, 질서와 혼돈, 영구와 땡칠이… 하여튼 그들의 불꽃튀는 맹세의 광휘에 순간 서대문-마포구 일대가 찰나의 순간동안 숙연해졌던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스플릿 앨범이 빠르게 나올 것 같았다. 두리반 2층의 맹약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테 스타 셉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후에게 “앨범 녹음 끝” 이라며 음원들을 보내왔다. 나후가 다소 당황할 정도의 속도로 보내온 그 음원들을 들어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후가 속한 빛의 세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암흑의 그라인드코어. 아니, 처절한 괴소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난리부루스였다. 여기에는 그 어떤 그라인드코어의 부모인 메탈/펑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미친 광인의 토악질을 액체육젓마냥 정갈하게 담은 wav파일 앞에서 그 동안 탱자탱자 놀고 있던 나후는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후의 리더 사류는 그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니, 이 새끼들… 이렇게 해서 보낼줄은 몰랐는데……”
그 후 나후는 이 암흑의 선제공격에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2년 반이 흘렀다. 미치광이 천재마냥 순식간에 녹음해서 던져준 세테 스타 셉트와 달리 나후는 드디어 그 대답을 내놓았다. 이것은 어둠의 도발에 대한 빛의 대답이었다. 더욱 짜임새있고, 박력있는 곡들로 ‘부모 밑에서 철저하게 교육받고 자랐으나 부모를 능가한’ 면모를 보여주는 곡들이었다. 이제 이 빛과 어둠, 불과 물… 뭐 여튼 그런 것이 공존하는 앨범이 드디어 나오게 되었다.
태초에 그라인드코어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 앨범은 현대의 그라인드코어가 양쪽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보여주는 교과서가 될 것이며, 그 방향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익스트림한 메탈계열의 음악을 찾아듣는 리스너들에게는 필수 교양이 될 앨범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그라인드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나 먹힐 이야기이고, 보통 사람이 들을 땐 둘 다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각종 소음애호가로서 말하건대 이것은 매우 좋은 소음이다.
* 덧붙여서 - 나후는 한국 최초의 그라인드코어 밴드로, 외국과의 교류가 없었던 한국 그라인드코어 씬의 상황 때문에 이제서야 외국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세테 스타 셉트는 일본의 노이즈그라인드코어 밴드로, 최근 전세계의 그라인드코어 변태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밴드중 하나이다.
권용만 (밤섬해적단, Christfuck, Fecundation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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