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에 이어 또 한편의 무협영화인 <연인>으로 장이모우가 다시 왔다. 영화 <연인>은 그의 전작인 <영웅>과 같이 진행되어온 작품이다. 그는 두 영화의 시나리오를 같이 진행하면서 완전히 상반된 두 편의 무협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장이모우는 어려서부터 무협소설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모습과는 너무 다른 것이어서 사실 당황스럽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무협이나 액션 영화 전문가가 아니다. 단지 무협영화를 좋아할 뿐이다. 따라서 나는 전통적인 무협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감정, 개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무협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수십 차례의 시나리오 수정이 이루어졌고, 결국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장이모우는 <붉은 수수밭>, <귀주 이야기> 같은 초기작에서 보여주듯 주제 의식이 강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감독이다. 그러던 그가 90년대 후반에 <책상 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 같은 소품류의 작품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의 최근작들인 <영웅>과 <연인>은 스케일과 스타일 면에서 그동안 그가 작업해왔던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변신을 보여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영웅>에서도 그는 오늘날의 중국에 가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연인>은 여기에서도 자유롭다. 전작이었던 <영웅>이 거대 담론을 담고 있는 영화라면, <연인>은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을 찍은 뒤 장쯔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장이모우 감독을 이렇게 평했다. “이미 거장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고 창작에 있어서도 더욱 열정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연인>의 영어식 제목는 <House of Flying Daggers>이지만, 원제목은 ‘사방에 숨어 있다’는 뜻의 <십면매복, 十面埋伏>이다.
859년 당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한 지방 포청에 속한 두 명의 포도대장이 비도문(House of Flying Daggers)이라는 조직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당 왕조가 쇠퇴의 길로 들어서자 조정은 부패하고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틈타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 반란조직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이 비도문으로 이들은 신비에 가려진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이들은 부자들에게서 재물을 뺏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었지만, 조정에서는 이들이 사람들을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역적으로 보았다. 비도문의 수장이 죽고 새로운 수장이 나타난 걸 알게 된 조정은 진과 리우에게 밀명을 내려 이 조직의 새로운 두목을 잡아오라고 한다. 진과 리우는 죽은 비도문 수장의 딸인 메이를 이용해 이들의 비밀 은신처에 잠입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관가의 추격을 피해 비도문의 은신처로 가는 과정에서 진과 메이는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유덕화가 맡은 역할은 엄격하고 냉철하며 원칙주의자로 등장하지만, 결국에는 질투심에 불타 파멸해 가는 ‘리우’라는 인물이다.
반면에 금성무가 맡은 역할은 ‘리우’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진’으로, 쾌활하고 열정적이며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와 동시에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말하는 자유로운 인물이다.
장쯔이가 맡은 역할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신분을 숨기고 사는 ‘메이’라는 인물로, 그녀의 신분만큼이나 복잡한 감정이 뒤얽힌 인물로 묘사된다.
이 영화의 절정은 세 사람의 사랑과 운명이 결국에는 서로를 향해 칼을 겨루고 마침내는 서로를 죽음으로 이끄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격렬한 사랑의 이야기는 결국 아픈 상처와 죽음으로 마감한다.
장이모우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이야기를 잘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그의 미장센은 이미 초기작에서부터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연인>은 그의 시각적인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펙터클과 아름다움은 황홀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화려한 볼거리들을 자랑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유곽의 장면이나, 대나무 숲에서의 전투장면, 꽃밭에서 관군과 펼치는 결투 장면, 마지막 설월에서의 결투 등.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압권은 모란방에서 유덕화가 던지는 콩을 쫓아 장쯔이가 북을 치는 장면이 아닐까한다.
장이모우는 이 장면에서 고전적인 무용과 무술을 가미한 장면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이는 이미 이안이 <와호장룡>에서 시도했던 것이거니와 장이모우 자신도 전작인 <영웅>에서 견자단과 이연걸이 머릿 서로 초식을 펼치는 장면에서 이미 시도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인>의 이 북춤 장면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무술감독인 정소동은 이 장면에서 긴 의상을 입은 장쯔이가 아름다우면서도 힘있는 모습으로 북을 때리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액션의 완성은 결국 음향효과와 함께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음악에 의해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신선이 길을 가리키는 동작이라고 해서 ‘선인지로(仙人指路)’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장면의 음악은 사운드트랙의 3번째 트랙인 ‘The Echo Game'이라는 곡이다.
처음에 이 영화의 음악을 탄둔이 아닌 일본의 영화음악가인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맡았던 것을 확인하고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세계적인 작곡가로 알려진 탄 둔은 장이모우의 전작인 <영웅>에서 음악을 맡았을 뿐 아니라 이안의 <와호장룡>에서도 음악을 맡았던 인물이다. 반면에 우메바야시 시게루는 왕가위의 영화에서 작업을 함께 해왔던 인물이다. 우메바야시 시게루와 장이모우의 접점이라고는 장이모우가 왕가위의 최근 영화 <2046>의 제작비용을 댔다는 것 정도.
우메바야시 시게루(梅林茂)는 지난 10년간 중국과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들에서 음악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무엇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