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 일환… 밴드형 댄스 음악으로 변신
- 펑키한 록의 향연… 관능과 흥의 ‘나이트 뮤직’
1986년 김완선은 ‘진도 8.8’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이전의 한국 댄스 음악 가수는 대개 단순한 율동 몇 개를 익혀 방송국 전속 무용단의 화려한 군무에 ‘묻어’가거나, 타고난 ‘끼’를 활용해 즉흥성 강한 안무를 선보이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김완선은 완벽한 카리스마와 자로 잰 듯한 독무로 솔로 댄스 가수의 새 전형을 만들어 냈다. 당대에는 마돈나 같은 바다 밖의 가수에게서나 볼 수 있던 퍼포먼스를 서울 시내에서 펼쳐낸 것이다. 뇌쇄적 눈빛과 확신에 찬 퍼포먼스로 가득한 데뷔곡 ‘오늘밤’이 한두 번의 방송만으로도 장안의 화제가 돼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케이팝의 칡뿌리를 당겨 프로토케이팝(proto-K-pop)을 발견하려면 최소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지나 김완선까지는 파봐야 한다.)
김완선 1집 타이틀곡 ‘오늘밤’의 센세이션은 겉으로는 댄스 퍼포먼스로 폭발했다. 그러나 내장된 기폭제는 단연 음악 그 자체였다. 분당 박자 수 150을 상회하는 긴박감 넘치는 전자 비트, 단조의 비감 어린 멜로디, 김완선의 관능적인 음색이 결합해 그 시대 댄스 음악에서 찾기 힘든 압도적 오라를 만들어 냈다. 외피는 신스팝, 댄스 팝이었지만 심장은 하드 록이었다.
‘오늘밤’을 비롯한 김완선 1집 전곡의 작사가, 작곡가는 산울림의 김창훈이다. 김창훈은 산울림 시절에 이미 ‘특급열차 (속에서)’ ‘하얀 달’ 같은 질주와 광기의 하드 록을 쌓아 올린 인물이다. BPM 153의 폭주 댄스 팝 ‘오늘밤’이 꿈틀댄 것은 이미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이 곡의 리듬 드라이브는 ‘베이시스트 X 베이시스트’의 시너지다. 김창훈이 작사·작곡한 곡의 최종 편곡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였던 박강호가 맡았기 때문이다.
OurR(아월)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2018년 데뷔한 이 밴드가 여기 재해석해 선보이는 ‘오늘밤’은 베이스기타의 리프로 시작한다. 드럼, 기타까지 합세해 출렁이는 펑크(funk)와 댄스펑크(dance-punk)의 조합으로 리듬 무더기를 뱉어낸다. 다만, 분당 박자 수는 원곡보다 20 정도는 낮춤으로써 질주감을 그루브감(感)으로 치환했다.
홍다혜의 보컬은 중반부까지 김완선에 가까운 벨벳의 질감으로 귀를 잡아끈다. 그러나 그의 허스키한 음성은 늘 그렇듯 미세균열의 텐션을 품고 있다. 그것은 결국 후반부 브레이크다운(breakdown) 파트의 비장한 슬로 템포와 함께 슬픔의 휘장을 찢고 분열해 잠시나마 분출한다. 그렇다. ‘오늘밤’은 ‘무서워요’를 반복하지만 애당초 호러의 노래는 아니었다. 저기서 무서움이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자 비탄과 고독으로의 자유낙하에 관한 것이었다. OurR의 리메이크는 ‘오늘밤’이 내포한 두 가지의 정서적 층위, 즉 춤의 흥과 고독의 애상을 인수 분해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두 개의 ‘오늘밤’을 비교해 듣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적막과 시름을 리듬과 춤으로 바꾸는 밤. 두 개의 템포, 두 개의 포맷. 이렇게 ‘오늘밤’은 풍성해졌다.
(OurR ‘오늘밤’ 리메이크는 산울림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성사됐다. 산울림은 역사적인 50주년을 맞는 2027년까지 밴드와 멤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50곡을 후배 뮤지션과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OurR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산울림의 대장정은 이어진다.)
임희윤 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