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이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신작 <Extraordinary>를 들고 돌아왔다. 6집이 되는 신보는 앨범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19년 만이고 싱글로 쳐도 6년 만이다. 컴백 새 앨범은 장기간에 걸쳐 품을 가다듬은 만큼 밀도와 강도, 온도와 습도를 구현한 회심작이다. 결정판이자 요즘 가요계 풍토에선 깜짝 놀랄 “클래시컬 사운드”의 수작으로 조금의 손색이 없다.
‘첫사랑’,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사랑의 향기는 설레임을 타고 온다’ 등 록 외피의 감성 발라드로 기억되는 임현정에게 유수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사운드는 운명적 선택이었다. 공백기에 거쳐야 했던 무수한 기쁨, 환희, 설렘, 무기력, 실망, 좌절, 포기 등 무수한 감정의 편린들을 담아내기에는 큰 소리 캔버스, 클래시컬 사운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이 말해주듯 사실 그의 이전 음악에도 클래시컬한 지분은 분명 존재한다. 신보는 그 이미지를 대폭 확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예리함과 둔중함이 가득한 빅 사운드에 ‘더욱 본격 집중’한 것은 그 장르야말로 지금까지 삶의 다층적 측면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임현정이 먼저 생각한 것은 “내 호흡대로 끌고 나가고 내 구역을 구축하는 싶은 음악적 자아의 실현”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누구 아닌 자신이 즐거운 음악이어야 했다.
<Extraordinary>가 돋보이는 것은 마치 펄럭이는 두꺼운 천을 입힌 듯한 사운드 덩치가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온전한 성찰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러브 메신저’라고 할 만큼 사랑을 노래하고 전파해왔지만 그간 세상과 사회 그리고 타자와의 무수한 관계가 핵심이었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과의 대화에는 인색했다. 전환점을 찾기 위해 그는 영국 런던으로 날아갔다. 애초 극도의 불안과 낯선 환경이 주는 긴장으로 휘둘렸으나 끝내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처음으로 자신을 마주하고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
이때 혼돈과 마음의 상처 속에서도 자아와 사랑은 변함없이 소중하다는 진리를 깨우치고 그 의미를 다시금 확신했다. 이전 4집과 5집에서도 사랑을 노래했지만 6집 신보에서의 사랑은 ‘이렇게 태어나진 나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믿음’, ‘인류애와 예술에 맞닿은 더 큰 사랑’으로 거듭났다. 임현정 자신의 확장적 재발견. 타이틀곡 ‘나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여전히 도전하며 배우기를 계속하는 자신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좋은 음악 환경 속에서 기쁨을 맛보는 큰 성과를 얻었으며 종국에 ‘음악 자화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자기애의 획득을 통해서 다시 한번 “사랑 없이는 진정한 것, 가치 있는 것, 유의미한 것은 절대로 없다”는 믿음을 공고히 했다.
새로운 지향인 클래시컬 사운드를 설득력 있게 구현한 곡들 ‘Good Time’, ‘The Butterfly’, ‘Talking of Eternity’는 오랜 공백기에 그를 괴롭힌 ‘과연 나 다운 것, 나 다운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침내 끌어낸 답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아/ 슬픈 날이여 이제는 안녕’(Good Time) ‘난 그저 나이고 싶었어/ 나 그저 자유롭고 싶었어’(Butterfly) ‘오직 너만을/ 너의 사랑만을 원해’(Talking of Eternity’)
이 곡들은 이미 대중들에 의해 충분히 검증된 선율 재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앨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출중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The Butterfly’에 이어 어쿠스틱 기타와 가녀린 보컬로 문을 열지만 후반부 강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압도하는 ‘Talking of Eternity’의 경우 자신과의 진정한 해후로 정의할 수 있는 신보의 주제를 축약하는 곡이기도 하다. 역동적 가창의 첫 곡 ‘Good Time’이 웅변하듯 앨범 전체적으로 임현정 보컬이 빛난다. 각 곡의 가창이 저마다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다. 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반응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겨난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LSO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명망 높은 세계적인 엔지니어 제프 포스터(Geoff Foster)와 편곡자 맷 던클리(Matt Dunkley)와의 협업은 두려웠지만 임현정은 두려움과 거리를 두지 않고 정반대로 끌어안으면서 본인이 원하는 소리에 더욱 다가갈 수 있었다. 결정타는 타이틀곡 ‘나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로, 이 곡은 록과 클래시컬 사운드의 크로스오버, 서로 다른 것의 공존, 감정과 의지의 병치를 ‘다층적’ 가창으로 완성한 수작이다. 뮤직비디오가 증명해줄 것이다. 이 곡과 한 쌍을 이루며 대비되는, 마치 산책로 같은 ‘너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도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 같은 ‘Only Three Days’, 이 앨범에 꼭 필요한 장엄한 연주곡 ‘A Love Song’, 힘차고 홀가분한 마무리 ‘Flow’ 역시 각각이 독립적 개성을 펼치면서 전체와 합을 맞춘다. 기존 곡이면서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새 단장하면서 크고 다르게 재탄생한 ‘청춘', 팝적인 ‘사랑이 온다’, 어른을 위한 동요라고 할 ‘God Bless You’도 알알이 빛난다. 수록곡 어느 하나도 쉬 지나칠 수 없는 수작 모음집이다. 이런 음악을 이 시점에 들을 수 있다는 건 행복이며 음악 수요자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중후반 음악 활동을 개시해 다섯 번째 앨범을 낸 2006년까지 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의 기세는 맹렬했다. 지금도 전파를 타는 오랜 애청곡을 보유할 만큼 대중의 호응을 얻었지만 이후 오랜 공백을 가지며 침잠했다. 2018년 복귀해 몇몇 싱글을 발표한 뒤 신보 발표는 기약하지 않은 채 그는 다시 사라졌다. 긴 시간 그는 혼신을 불태워 자신과 싸웠다. 중견의 나이에 끝내 진정한 자아를 감싸안고 돌아온 그가 신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가차 없는 단호함에 실어낸 사랑에의 역설(力說)이다. 열정과 몰두와 헌신으로 그는 이제야 원하던 결실을 얻었다. 다름 아닌 ‘임현정 음악’이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