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멜로디> 장필순
2024년 대학로의 특별한 극장 <학전>이 문을 닫으며 “학전 Again”이라는 시리즈 공연을 했다. 그때 장필순의 무대에서 이 노래가 처음 불려졌다. 조금은 수줍은 소개도 있었다. 어느 날 선물처럼 후배 이규호가 보내온 노래라고, 대놓고 부르는 사랑 노래라고 했던 것도 같다. 수줍었던 이유는 이 노래가 다른 누구의 사랑도 아닌 무대에 선 그, 장필순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중 가요는 왜 늘 사랑 타령인지 짐짓 불만을 가진 시절도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십대 때 그놈의 사랑 타령은 유치하고 간지럽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미끈거림이 느껴졌다. 그 사랑은 멀었고 낯설었고 어쩐지 낯 붉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사랑 타령이 아닌 노래들을 사랑했다. 사회적인 이야기, 존재에 대한 이야기,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들. 사랑 노래라 해도 좀 색다른 것들이 좋았다. 대놓은 핑크 무드보다 조금은 모른 채 하는, 무심해보이기도 하는 사랑 노래가 멋있게 들렸다. 장필순의 노래는 대부분 그 ‘멋있는’ 사랑 노래 안에 있었다. 술 한 잔 걸치고 흐드러지게 뽑는 ‘트로트’ 한 자락이나 휘황한 화장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며 유혹하는 ‘댄스 뮤직’의 관능과 거리가 있었다.
누구나의 흔한 이야기처럼 수많은 연애사가 얽히는 청춘기를 지나고 결혼, 아이, 노화가 뒤엉키는 생활 속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중장년에 이르면 ‘사랑 타령’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은 사회를 노래하건 존재를 노래하건 외로움과 삶을 노래하건, 그것은 좀 다른 형식의 사랑 노래였다는 사실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스물의 사랑 노래만큼 삼사십 년 온기를 잃지 않는 잉걸불같은 사랑 노래도 충분히 뜨겁고, 은유법 속의 은근한 고백만큼 수사없이 직설적인 고백 모두 힘겹게 뚫고 나온 진심을 담는다는 사실 말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뿐 아니라 친밀한 거리의 사람으로 오래 장필순과 조동익의 사랑을 지켜본 이규호는 이토록 직설적인 사랑 노래를 쓸만한 사람이다. “나의 삶 속에서 / 너는 베이시스트 / 깊게 내린 뿌리의 멜로디”는 더할 나위 없는 그들의 주제가이다. 하지만 좋은 사랑 노래가 언제나 그러하듯, 그들만의 주제가는 아니다. ‘까만 밤이 열리면’ 밤의 어둠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별들의 멜로디’를 듣게 되는 모든 연인들을 위한 주제가다. 때로는 열기를 북돋는 달짝지근한 발라드로, 때로는 서로를 쉬게 하는 자장가로, 또 때로는 서로를 웃게 하는 트로트로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것이 생활 속에 스민 사랑의 모습이다.
단출한 피아노 라인에 최소한의 음향 효과만으로 자박자박 걸어가는 멜로디는 꾸밈없이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조동익은 이 소박한 직설법을 자신다운 소리로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장필순은 대체하기 어려운 음성으로 여러 번 반복되는 “사랑해”에 다채로운 빛깔을 입힌다. 후렴구에 대놓고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노래하는 그런 곡을 꼭 써서 들려주고 싶었다는 이규호의 마음은 삶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모두 동행한 우리 모두의 사랑에 전하는 찬가에 이르렀다. 노래 속 “사랑해”는 동행의 시간이 길고 이야기가 많았던 사랑이었던 만큼 힘이 센 직설법이다.
글 : 신영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