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머리와 마음에 기대어 하루하루 충실히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sucozy의 두 번째 EP [From a distance] 는 분노를 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폭발하거나 표출되는 감정이 아니며, 오히려 감정을 일정한 거리에서 응시하고, 관찰하려는 시도다.
<차오른 말>에서 시작된 자기혐오는 <씻고 나면 사라질 것들>에서 일시적으로 잠잠해지지만, <제의>를 거치며 다시금 되살아난다. <불이 붙은 나무>에서는 그 감정이 결국 타인에게 전이되려는 충동으로 번지고, <Inter-lude>에서는 그러한 흐름 전체를 내려놓은 채, 나 자신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앨범에서 sucozy는 스스로를 감정의 ‘관찰자’가 아니라 ‘관찰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나를 분석하고 이해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이자, 감정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사운드적으로는 기존의 팝 밴드 중심 구성에서 벗어나, 보다 거칠고 탁한 톤의 인디 록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감정의 온도와 질감을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이는 음악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sucozy에게 새로운 실험이자 확장이라 할 수 있다.
[From a distance]는 끝이 아니라 고요한 쉼표다. 감정은 완결되지 않고, 질문은 계속된다.
01. 차오른 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목구멍에서 소용돌이치는 기분은 너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만큼 나도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02. 씻고 나면 사라질 것들
분노는 분노를 낳고, 답답한 마음에 털어놓아도 해소되지 않고 계속 생각나기만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나는 나의 분노를 쳐다보며 되뇌이고 있습니다.
03. 제의(祭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읽고 썼습니다. 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해치는 방법을 택한 담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04. 불이 붙은 나무
분노하는 나는 마치 불에 타고 있는 나무같습니다.
제자리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불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심정은 너무나 비참하고 괴롭습니다.
05. Interlude
관찰자는 관찰 대상이다. 나 자신을 계속 타인처럼 바라보고자 합니다. 나의 마음이 나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의 생각이 나를 어떻게 말하게 하는지 관찰하며 내 마음, 생각, 감정과 나를 분리해보려 합니다. 이 앨범은 이 곡으로 끝나지만 끝나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일들 중 하나의 일이 매듭지어졌을 뿐, 줄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