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한 달 정도 필리핀 예수회 공동체에 머무를 때였습니다. 당시 매일 미사를 참석하며 황홀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례 음악이 참 좋았기 때문입니다. 전례에 쓰인 음악들은 대부분 필리핀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이 만든 곡들이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전례 음악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거룩하면서도 아름다웠고, 따라 부르기도 쉬웠습니다. 곧 전례적, 미적, 사목적 특성을 고루 갖춘 음악들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의 이 체험은 예전부터 제가 갖고 있던 꿈, 곧 아름다운 미사곡을 쓰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미사곡을 쓰는 것은 당장이 아니라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50대는 되어야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곡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습니다. 4년이 지나 2018년에 제가 서강대학교 교목수사로 일할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라시아스’라는 청년 전례단체를 동반하고 있었는데, 교목처장 신부님께서 제가 음악을 공부했으니 이 청년들과 함께 부를 미사곡을 쓰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초대의 말씀을 듣고 몇 달간 기쁘게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머리를 감으면서,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멜로디를 구상하며 혼자 흥얼거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책상에 앉으면 이 악상을 악보에 담곤 했습니다. 이렇게 한 곡 한 곡이 완성될 때마다 악보를 출력해서, 마치 드라마 쪽대본처럼 쪽악보를 가지고 그라시아스 청년들과 주일 연습 시간에 불러보곤 하였습니다. 그라시아스 미사곡은 이렇게 이 청년들과 함께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또 5년이 지나고 이제 녹음으로 미사곡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음악을 다시 들어보니, 제가 품었던 원대한 꿈, 곧 거룩하면서도 아름답고 부르기 쉬운 곡은 탄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언젠가는, 정말로 한 50대가 되면 더 좋은 곡을 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주를 해 주신 성 김대건 성가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를 소중히 담아 주시고 편집해 주신 요한보스코 형제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음반은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해 주신 예수회 이냐시오 미디어와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Ad Majorem Dei Gloria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