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재능이 있던 그는 동양중학교 재학중 <엽전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동양중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워싱톤 위트고등학교 시절 교포 자녀들과 그룹 <일방통행>을 결성해 활동했으며, 미국인 친구들과 펑키 그룹 를 결성하여 대학가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흑인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소울과 R&B스타일에 심취하여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등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정립했다. 그는 한국에 잠깐 놀러왔다가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강수지의 소개로 신세계 레코드사 실장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혼자 귀국, 1991년 2월에 테크노 댄스뮤직 `꿈`으로 데뷔했다.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신선한 그의 음악은 이내 청소년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의 데뷔앨범 는 당시 스웨덴 출신의 인기그룹 `ABBA`의 뮤직디렉터 `Olleram`이 디렉터를 맡았고 R&B, 펑키, 소울 등 흑인음악의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다. 의외로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실험적으로 시도한 테크노 하우스 풍의 `꿈`이 각종 가요순위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93년 한해 동안 금품살포혐의, 대마초흡연혐의 등 충격적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음악생활을 멀리했던 그는 1995년에 5인조 록 그룹 를 결성, 김도균, 신윤철(기타리스트), 김민기(드럼) 등 국내 수준급 뮤지션들을 영입해 재기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별로 반응을 얻지 못한 채 활동을 접어야 했다. 1년후 그가 직접 기획한 앨범 를 발표, 신곡 `가`를 선보이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같은 해 12월, 그는 컴백음반에 수록된 신곡과 자작곡을 위주로 콘서트를 펼쳤고 그를 기다려준 많은 팬들로 부터 환영을 받았다. 1998년 초에 발표한 4집앨범의 수록곡 `헤어진 다음날`로 다시 인기 정상의 자리를 회복한 그는 1999년에 를 타이틀곡으로 한 5집앨범 를 발표하면서 콘서트위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
이현우 4집 수록곡. 헤어진 다음날 같은 20대를 위한 팝 음악과나는 카우보이가 되고 싶다, 같은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이 혼재된언제나 그렇듯 흑인 음악과 팝 음악과 일렉트로닉과 락 음악을 다 해보려는이현우의 야심이 보이는 앨범. 헤어진 다음날, 은 너무 많이 나와서 잘 안듣고다른 곡들만 테이프 늘어지도록 들었다.누가 나에게...
일단 이현우의 앨범 리뷰는 상대적으로 쓰기 편하다. 이는 그의 스타일이 이제 어느 정도 규정되어져 있어서 그가 발표하는 새 앨범을 듣기 전에라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음악들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는 곧 그 스타일을 맘에 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항상 담아낸다는 믿음의 이유가 될 수 있고, 그걸 맘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발전...